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KBS1라디오진행자, 논설위원

지난 2011년 유력한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미국 뉴욕에서 성추행 혐의로 체포됐다. 전세계 언론이 이 유례없는 사건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 언론만큼은 시큰둥했다. 사건이 벌어진 지 며칠 뒤에야 보도했다. 보도 내용도 정쟁과 음모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급기야 전세계 언론은 프랑스 언론이 권력자의 충동적인 삶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프랑스 언론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보도 준칙으로 삼았던 '사생활'(privacy) 보호로 맞섰다. '아무리 공적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사적 영역은 문제 삼지 않는다'

요즘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에서 벌어지는 일도 당시 사건의 극적인 재판(再版)이라고 할 만하다. 이 나라 언론, 더 나아가 국민의 사생활 보호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예다. 사건은 어느 언론이나 국민이건 흥미를 느낄 만한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 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미 동거인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연인이 등장했다. 그가 야심한 시각에 엘리제궁을 떠나 이 연인의 집을 찾는 장면이 타블로이드에 포착됐다. 현 동거인은 이 사건에 충격을 받고 몸져누웠다. 이 대통령은 30년간 정치적 동지이자 실질적 배우자였던 이와 헤어져, 현재 동거인과 엘리제궁에 입성한 이력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언론과 국민은 대통령을 공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퍼스트레이디 문제만큼은 프랑스 언론 사이에서도 논란거리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사생활을 떠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간은 자연스럽게 현 동거인이 퍼스트레이디 대접을 받아 왔다. 하지만 새 연인의 등장으로 혼선이 빚어지게 됐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이와 관련한 질문이 등장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예상했던 것처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휘둘렀다. 자신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사생활을 존중해줬으면 한다는 주장이었다. 퍼스트레이디 문제는 오는 2월11일 방미 전까지 매듭짓겠다는 약속도 했다.

사생활 보호와 공직자의 윤리,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할까.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이 자유분방한 사생활에도 언론의 보호와 국민의 무관심이라는 혜택을 누려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올랑드 대통령의 전임자인 사르코지 역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인기 연예인인 새 연인의 등장으로 두 번째 이혼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 일은 대선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1990년대 미테랑 대통령의 경우는 아예 혼외 자식이 있었지만 프랑스 언론은 이를 끝까지 숨겨줬다.

단순한 정치 관행이나 문화가 아니다. 프랑스에는 '사생활보호법'이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개인의 사적 영역 보호 제도도 있다.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포함한 모든 주체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위반할 경우는 우리 돈으로 최대 4000만원 가량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사생활의 엄격한 보호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공인이 치러야 할 대가라는 점에서 정치인과 공직자, 연예인 등 공인에 대해서는 예외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점 하나만은 분명하다. 사생활을 은밀하게 캐고, 이를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후진적이다. 우리의 경우도 사법당국의 핵심이었던 한 공직자의 사생활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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