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논설위원

최근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올해부터 신입사원 공채 때 대학총장에게 인재추천권을 주겠다고 발표했던 삼성그룹이 전국 200여개 대학에 대학별 추천 인원을 할당해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제주지역의 대학 역시 소수의 추천인원을 할당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우선 삼성이 일방적으로 대학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냉정하게 보자면 인재를 뽑고자 하는 것은 삼성 마음인데 그들이 대학에 할당한 추천인원이 '일방적'이라며 분노하는 것 또한 우습다. 삼성이 신입채용 기준으로 제시한 인원을 대학 총장들과 모여서 'OO 대학교는 몇 명으로 할까요'라고 상의한 뒤에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삼성측에서는 총장 추천제가 모의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시험 등 대학 내부의 취업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대학 총장에게 입사 지원자를 추천해달라고 의뢰한 것 뿐, 추천 방식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면 된다"며 "다만 대학이 '스펙'이나 외국어 능력보다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많이 추천해주기를 바란다"고 답했다고 한다.

요즘 같이 대학이 글로벌 경쟁 체제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어느 대학 총장이나 자신의 대학 졸업생들을 많이 취업시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의 지원여부에 희비가 엇갈리는 요즘 대학의 상황에서 대학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는 취업률이며 대학은 학생들의 취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국내·외의 대학평가기관에서 또는 교육부에서 대학평가에 의한 대학의 서열이나 수준이 발표될 때마다 해당 대학에서는 희비가 엇갈리며 대학평가의 문제점이 화두가 되곤 한다. 대학의 서열과 수준은 우수한 학생 유치 및 행·재정적 지원과 연계되며 대학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항으로 대학은 평가 방법과 결과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이 이미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끊이지 않는 지금의 현실에서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한 기업의 이 같은 행태는 대학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은 구성원의 헌신적인 노력을 뒷받침으로 한 발전적 경쟁을 통해 존재해 왔다. 이미 그 자체로 각 대학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서열이나 수준은 대학의 노력에도 기인하지만 역사·지역성·국가의 정책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성립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이라는 거대기업이 각 대학별로 우수인재의 수를 일방적으로 선정해 추천해 달라는 방식은 또 다른 대학의 서열화를 불러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삼성그룹이 공식적으로 밝혀둔 인재상은 열정·몰입으로 미래에 도전하는 인재, 학습·창조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재, 열린 마음으로 소통·협업하는 인재를 말한다. 이러한 인재상은 아마 대다수의 대학에서 교육의 목표 내지는 가치로 삼는 인재상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학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학생들이 단지 학점과 스펙에만 치중하는 시대적 편협성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인성을 갖춘 인재로 배양된다면, 최고의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자연스럽게 부합할 것이다. 수치화된 자료만으로는 대학의 진짜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대학은 학생들의 인격 성장과 능력계발에 우선 가치를 두고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비정상적인 교육과 대학평가가 정상화될 때, 대학이 졸업생들을 기업에 '할당'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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