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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담론]고소리술 살아나야 하는 이유황인주 제주에코푸드 대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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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2-09 (일) 19:38:06 | 승인 2014-02-09 (일) 19:46:34 | 최종수정 2014-02-09 (일) 19:38:16

   
 
     
 
역사적으로 탐라라고 불리는 이 섬은 '술들의 고향'이었다. 춘하추동 당집에 무리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갖추어 당굿을 벌였다. 그 술잔에는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 들어있었다. 이 두 술은 좁쌀로 빚은 술이다. 토질이 척박한 이곳에서는 벼 대신 조 농사를 지어 술을 빚었다. 술떡은 좁쌀을 맷돌에 갈아 가루를 내고 구멍떡으로 만들었다. 구멍 도너츠 모양의 술떡을 오메기라 부른다. 저절로 누룩과 술떡으로 빚은 술을 오메기술이라 이름이 달라붙었다. 오메기술은 탐라국 때부터 늘 토착민이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함께해 왔다.

한편 오메기술이 한창 유행이던 13세기 말엽의 일이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의 기병들이 무리를 지어 탐라로 들어왔다. 본래 북방 유목민들은 발효음식의 귀재들이다. 초원에서 가축의 젖을 발효시켜 수많은 유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 중 하나가 젖술이다. 젖술을 고소리에다 증류시키면 진한 소주가 나온다. 증류기술은 이슬람의 연금술사들이 갖고 있었다. 당시 실크로드가 동서로 연결되면서 세계로 전파된 것이다. 멀리 인도차이나반도·자바·수마트라 등지까지 '아라키'나 '아락'이라는 아랍어로 퍼져 나갔다.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멜 표류기에는 제주목사가 따라준 '아락'을 마셨다고 기록이 그것이다. 이들 일행이 소주 즉, 고소리술을 마신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일부 서귀포지역에서는 고소리술을 '아랭주'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탐라에서는 주변국가로부터 그 기술을 배우지 않았다. 증류기술을 체득한 유목민들이 당시 탐라여성과 다문화가정을 이루어 전승된 것이다. 군수기지인 이곳에서 음료로 뿐만 아니라 약용 또는 약초의 약리성분 침출용으로 쓰였던 것이다. 지금도 수십 종의 약용주가 민간요법으로 전해져 온다.

결국 700년 전 세계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토종 좁쌀 오메기술 발효기술과 외부 첨단 증류기술의 만남이 이루어진 셈이다. 두 기술은 융복합과정을 거쳐 고소리술을 탄생시켰고 수백년에 걸쳐 대대손손 전승돼 왔다. 말하자면 고소리술은 탐라 토착민과 피를 나눈 몽골족이 공동으로 창조해온 생명공학기술의 산물인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주사회에서 고소리술문화의 뿌리는 원형이 끊겼다. 그 이유는 일제의 침략과 수탈 때문이었다. 일제는 행정력을 동원해 이른바 '공출'을 자행했다. 군수물자가 될 만한 보리·좁쌀 등을 모두 거둬갔다. 더욱이 '주세법'을 제정해 가정에서 술 빚는 것을 법으로 금해 단속했다. 그러자 가정에서는 전통적인 습속에 따라 제례나 당굿이 있을 때마다 몰래 밀주를 하는 풍속이 생겨났다.

설상가상으로 해방 후에도 일제의 법이 그대로 통용됐다. 면 서기들이 동네방네 고소리술을 증류하는 냄새를 쫓아다녔다. 적발하면 고소리를 깨고 그 숫자만큼 벌금도 추징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경찰보다 면서기가 더 무섭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공장식 희석식 소주가 경조사에 득세하면서 오메기와 고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몽골인과 함께하면서 700여년 길러져 온 고소리술이 자랑스럽다. 그 내력이 탐라의 진정한 역사요, 문화이기에 더욱 그렇다. 일제침략 경술국치 100년의 아픔을 딛고 좁쌀 고소리술은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한다. 단지 1세대가 아니라 10세대까지 전승돼야 한다. 중국의 백주나 서양의 위스키에 비해 손색이 없다. 물론 지역산업 진흥과도 연계돼야 한다. 농업·도예·요리와 관광지 등 주변 산업의 코어가 돼 6차산업을 형성할 수 있으면 고소리술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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