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앤팡> 제주미학기행
[김유정의 미학기행 멋과 미] 47. 한국 - 물의 문화사 1

▲ 홍진숙 작. 애월 남당암수. 70x61㎝. 다색판화
창조력 원천, 물에 생명력·부정 물리치는 정화의 힘 있다고 믿어
구석기 서귀포시 생수궤 유적, 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적 추정
 
물의 철학적 의미
 
물은 자연으로서 삶에 직결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신화는 원초적 상상력과 역사를 반영하면서도 비현실적인 공간을 구성하는데 반해 물은 생존이라는 사실과 직접 연결돼 있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장소를 제시한다. 이에 사람이 있어야 신화와 역사가 있다면, 물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있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물은 사람을 살리고 마을을 꾸리게 할 정도로 중요하다보니 다양한 철학적 의미를 생산하기도 한다.
 
물의 15세기 표기는 '믈'이다. 중세 국어와 현대 국어에서 이 단어가 물건에 묻어서 드러나는 빛깔을 뜻하기도 하는데 소금물, 감물과 같은 것이다. 물(水)은 '고르게 한다(準)'는 뜻도 있다. 세상에 물보다 평평한 것이 없기 때문에 물길을 기준으로 하여 마을과 집과 무덤을 선정한다. 물도 높은 곳에 상류가 있고 낮은 곳에 하류가 있다. 하류는 여기저기서 많은 물줄기가 모여들다보니 상류보다는 훨씬 더럽게 된다. 그래서 공자는 하류를 세상의 저자거리에 비유하여 "군자는 하류에 머물기를 싫어한다. 천하의 악이 모두 거기로 돌아오기 때문이다(是以君子 惡居下流 天下之惡 皆歸焉)"라고 했다.
 
또 관자(管子)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요 모든 생명의 종실이다(萬物之本源, 諸生之宗室)"라고 하여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했던 서양의 탈레스와 같은 생각을 했다. 20세기초까지 만물은 물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수소로 이루어졌다고 통용되기도 했다. 만물의 유전설(流轉說)을 주장하는 헤라클레이토스 학파의 말도 인생의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신이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까닭은 늘 새로운 강물이 당신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G. Bachelard)는 물을 부드러움과 난폭함으로 양분, '부드러운 물'은 거울·죽음·이별·여성적·유동적 이미지와 물이 흙·불·공기 등과 결합되는 이미지, 물에 대한 인간의 무의식적 갈망을 말한다고 했다. '난폭한 물'은 인간의 의지력에 대한 적(敵), 또는 대립자이며 방해자 혹은 도전자라고 말한다.
 
물의 상징적인 해석 또한 다양하다. 제주도 <천지왕 본풀이>에서 물은 창조력의 원천으로 비쳐지는데 하늘에서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 흑이슬이 솟아 합수하여 만물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물에는 생명력과 부정을 물리치는 정화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정화수 숭배는 우물의 숭배, 물의 숭배이고 천지신명께 바치는 행위이기도 하다. 민간에서는 물법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치료하기도 한다.
 
물이 생활 속의 교훈으로 사용된 예는 많다. '물같이 살라'고 함은 어떤 형식에든 틀에 맞는 물의 속성 때문에 '유연하라'는 말이 되고, '샘이 있는 물은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근원이 있으면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을 빌러 다니는 것보다 우물 파는 것이 낫다'는 말은 근본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제주의 물 문화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 길이가 긴 고구마 모양의 섬인데 해안 용천수가 잘 발달돼 있어서 마을이 해안 위주로 형성되었다. 제주의 용천수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해발 1862m 지점의 방아샘을 시작으로 제주도 전 해안에 911곳이 분포돼 있다. 이 용천수 중 해발 200m 이상의 물은 72곳만이 중산간과 산간지역에 있으며 약 90% 이상이 저지대와 해안을 중심으로 샘이 형성돼 있으나 무자비한 개발 바람에 의해 갈수록 용천수가 사라져 가고 있다.
 
▲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3리 산이물
제주도는 물의 중요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화산 암반을 뚫고 나오는 용천수야말로 생명수라고 할 수 있다. 해안 중심으로 용천수가 발달하다보니 과거에는 마을이 가까이 자리함으로써 왜구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왜구는 빈번하게 제주의 신화와 역사에도 등장하게 되며 물을 둘러싼 여러가지 이야기는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제주의 물은 눈물과 회한의 실타래와 같다. 전통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뭄이었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생명수와 같은 물을 길어야 하는 여성들의 또 다른 노동은 제주인의 삶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물과 관련한 도구로는 물허벅과 참항이 대표적이다. 물항, 물팡, 물구덕은 물허벅과 함께 용천수를 길어다 먹어야 하는 제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종합세트이다. 참항은 용천수가 없는 중산간 지역의 빗물을 받는 저장 용기이다.
 
또 물과 관련한 신으로는 물할망, 수랑상태자마노라(水靈位)가 있다. 물할망은 삼승할망의 변신이고, 수랑상태자마노라는 <제주내왓당무신도> 10신위 중 한명의 신으로 물의 정령에 다름 아니다.
 
물과 연관 있는 의례로는 기제사(忌祭祀)가 있다. 예로부터 제주인들은 제사를 다른 말로 '물 한적 거린다'라는 말로 대신 표현했다. 가난한 집안의 약소한 제사를 표현하는 말이다. '물구신'은 익사사고 희생자를 말하고, '물들었다'는 것은 한 통속이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용천수가 없는 중산간 마을에서는 봉천수를 먹었다. 사람이나 마소나 우물을 파서 먹거나 못과 같은 자연 습지를 이용하였다. 봉천수는 검은 빛이 나는 지새항에 담아 두면 물이 맑게 정화된다. 이 검은 빛의 지새항은 검은 굴이라는 돌가마에서 구워낸 옹기로, 900도 미만에서 불을 지피다 모든 구멍을 갑자기 막아버리면 검은 연기가 생기는데 그 연기를 먹인 항아리이다.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하게 되면 중산간 마을 사람들도 허벅을 지고 먼 거리를 걷거나 마차를 이용하여 해안의 물을 길어다 먹었다. 밭에 가서도 제일 먼저 할 일은 주변에서 물을 찾는 일이다. 물이 있는 곳을 알아두어야만 필요시 식수로 쓸 수 있는 데 그것에 그치지 않고, 부모는 물이 있는 곳을 꼭 자녀들에게 알려주어 대가 바뀌어도 물이 있는 곳을 알도록 했다. 밭에 갔을 때 물이 부족하게 되면 주변 오름 자연동굴에 고이는 물이나 모슬포인 경우 모슬봉 일본군 진지동굴 천장에서 떨어져 고인 물을 길어다 식수로 썼던 예가 그것을 말해준다.
 
물의 오염은 풍토병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1937년 일제강점기에 물과 관련된 질병 조사를 살펴보면 표선리와 남원읍 제산포 부근까지 8㎞여 이르는 지역에 살고 있는 14세 이상의 8%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병에 걸린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1960년대까지 마을마다 나병 환자가 드물지 않게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모두 물과 관련돼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물은 인류 태초부터 사람의 생명을 좌우했기 때문에 어떤 지역 어떤 시대라도 물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제주의 마을 또한 물의 입지 조건에 따라 마을의 규모가 크거나 작아지기도 했다. 물과 관련된 우리나라 지명은 물의 중요성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무척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를 테면 정(井), 천(泉), 호(湖), 지(池), 담(澹), 담(潭), 택(澤), 소(沼), 강(江), 하(河), 수(水), 천(川), 계(溪), 원(源), 포(浦), 정(汀), 진(津), 선창(船倉), 사(沙), 세(洗), 유(流) 등이다. 제주의 지명에도 이들 단어와 연관된 곳이 매우 많다. 성천(베릿내:星川), 조수(造水), 용수(龍水), 용담(龍潭), 강정(江汀), 창천(倉川), 수원(洙源), 이호(梨湖), 낙천(樂泉), 사계(沙溪) 등이다.
 
구석기 시대 추정 유적인 서귀포시의 생수궤 유적은 물과 관련된 유적으로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생수궤'는 '바위 굴 내부에서 물이 솟아나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기에는 바위굴에서 물이 계속 고이고, 건기에도 샘의 용출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1955년에 서귀포에서는 굴 내부를 정비하여 식수원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이 샘의 기원은 구석기 시대 퇴적층이 생긴 이후부터라고 한다. 물이 인간 삶에 없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부분이다.
 
이 생수궤 유적은 서귀포시 서귀동 천지연 폭포 일대의 단애면에 형성된 바위 그늘 유적으로 제주 지역에서는 고고학적 발굴조사에 의해 확인된 첫번째 구석기 유적이라고 한다. 이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긁개, 밀개, 톱니날석기, 홈날석기, 뚜르개, 새기개 등의 잔손질 석기와 돌날과 돌날몸돌, 좀돌날몸돌, 격지 등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이 다수 확인되었다. 특히 생수궤 유적에서 중요한 것은 주변 낙반석을 이용한 석기 제작 기술로 '모시리 격지' 떼기 기술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반도 동굴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물이라고 한다. 이 지역의 조면암류는 암석의 조직이 비교적 치밀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날을 얻을 수 있다.
 
빛에 의해 방출되는 루미네선스를 OSL(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이라고 한다. 루미네선스는 석영, 장석 등의 무기 결정에 축적된 환경방사선 에너지가 열 또는 빛에 의해서 외부의 빛으로 방출되는 물리적 현상이다. 생수궤 유적의 형성 시기는 최후 빙하기 해수면 하강 시기와 밀접한데, OSL분석 결과 최하층에서부터 2만6900±3300 BC, 1만7500±1700 BC가 층서적(層序的)으로 나온바 있다(서귀포시 생수궤 유적 발굴조사보고서, 국립제주박물관, 2012).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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