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진상규명 활동 (5) 제주 법조인

▲ 2000년 7월20일 제주지방법원이 4·3계엄령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사실을 보도한 제민일보에 대해 승소판결을 내리자 4·3관련단체 관계자와 유족들이 환호하고 있다.
4·3계엄령 보도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주출신 김창보 판사 제민일보 승소판결
문성윤 변호사 15년째 4·3소송 전담수행

제주4·3에 대한 이념적 논쟁은 1990년대 극에 달했다.
 
수십년간 금기시 됐던 4·3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자 이를 저지하려는 역사 왜곡 시도가 거세졌다.
 
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으로 무고한 양민학살이 입증됐고, 이는 4·3 진상규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됐다.
 
4·3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제주 출신 법조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가 1999년 9월21일 제민일보를 상대로 제주지방법원에 낸 정정보도 및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꼽을 수 있다.
 
이 사건은 제민일보가 1997년 4월1일자 1면 '4·3계엄령은 불법이었다' 제목의 기사에서 비롯됐다.
 
제민일보는 4·3 당시 계엄령 하에서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당한 사실을 보도했고, 이인수씨는 허위보도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2000년 7월20일 "계엄령 선포를 전후한 시기에 군·경 토벌대에 의한 무장대 진압과정에 제주도 중산간 마을이 초토화됐고, 많은 주민들이 재판절차 없이 살상되는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라며 이인수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면서 "제민일보 기사는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평가를 보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계엄령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현재 제주지방법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 출신 김창보 법원장이 내린 판결이다.
 
김창보 법원장은 판결 당시 제주지법 부장판사로 재판장을 맡고 있었으며, 사건은 항소심을 거쳐 2001년 4월27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번 사건을 승소로 이끌어낸 문성윤 제주지방변호사회장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제민일보 변호를 맡아 4·3계엄령에 의한 무고한 양민 학살을 입증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 회장은 법정에서 처음으로 4·3 희생자 유족들의 증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념적 논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4·3사건은 문 회장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도 4·3의 진실을 밝혀내고자 최선을 다했다.
 
문 회장이 4·3 전문변호사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15년째 4·3과 관련한 각종 소송을 도맡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제주4·3희생자유족회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며, 무료 변론과 상담을 해주는 등 4·3 희생자 유족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문 회장은 4·3특별법에 따라 결정된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에도 기여했으며, 지금은 4·3 화해·상생 선언을 폄훼하는 행위에 맞서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김경필 기자

"제주4·3 희생자 유족을 비롯한 도민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4·3 관련 소송을 맡아 수행하게 된 이유다"

문성윤 제주지방변호사회장은 1999년 제민일보 4·3계엄령 보도 관련 소송을 시작으로 15년째 4·3 관련 소송을 전담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문 회장은 "제민일보가 4·3계엄령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4·3문제가 공론화 됐다"며 "이인수의 소송 등 4·3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사법부는 도민의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했다.

특히 "제민일보 소송에서 4·3 희생자 유족 5명이 처음으로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하게 됐는데, 제주 출신 변호사로서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이념적 논쟁을 접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 회장은 "지난해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특별자치도재향경우회가 60여년간의 갈등을 접고 화해와 상생을 선언했다"며 "이런 노력들이 있을 때 발전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또 "힘들게 밝혀낸 4·3의 역사와 진실을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며 "이를 위해 4·3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회장은 "그동안 4·3과 관련해 많은 소송을 수행하면서 수집한 자료와 기록들을 나중에 제주4·3평화재단에 기증할 생각"이라며 "국가도 4·3 희생자에 대한 생활지원금 지급기준 등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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