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논설위원

1392년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된 후 새로운 수도를 정하기까지는 무려 2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처음 새 수도의 후보지는 공주 계룡산 아래였으나 여러 논의 끝에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정해졌다. 한양으로 정해진 후에는 궁궐의 위치를 놓고 승려인 무학과 유학자인 정도전이 대립했고 그 결과는 정도전의 승리였다. 정도전은 자신이 가졌던 철학을 새로운 수도인 한양에 적용했다. 군주가 남향해서 백성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경복궁을 북쪽에 놓고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의 예법에 따라 궁의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두고 한양의 경계에 성을 쌓고 각각의 방위에 성문을 뒀다. 이 철학은 조선의 다른 도시들에도 적용됐다.

1486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지방도시는 부·목·군·현을 합쳐 360여 곳에 달했다. 이중 세 개가 제주에 있었다.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이다. 제주의 주요 도시였던 이 세 곳에는 지금도 정도전이 가졌던 도시에 대한 철학이 남아 있다. 동문·서문·남문 그리고 이 문들을 잇는 T자형 가로와 북쪽의 관아들, 이 모두는 600년 전 한 사람이 가졌던 철학의 산물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도시들이 겪는 고통은 잘못된 도시계획이 아니라 도시에 대한 철학의 부재에 있다. 외국의 도시를 접한 공무원들이나 건축가들은 그 풍경을 자신의 도시에 옮겨놓기에 급급하고 자신들이 목격한 마천루의 휘황찬란함에 우리의 도시에도 그런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뉴욕과 같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강조하며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충만한 문화관광도시를 꿈꾼다. 구도심 재생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자문 교수의 해외사례와 답사후기들이다. 이들에게 듣기 좋은 주장은 있지만 철학은 없다.

우리가 꿈꾸는 유럽의 멋진 도시들은 도시계획이 잘 이뤄진 것도 아니며 공무원과 건축가의 해외경험이 옮겨진 것도 아니다. 자문교수들의 답사후기가 적용된 것도 아니다. 그 이면에는 그 도시만의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에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이 도시들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풍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이다.

스페인의 몰락한 항구도시인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으로 관광객 1000만시대를 열었을 때 너도나도 이 미술관을 벤치마킹했지만 그 이면에 담긴 도시에 대한 시장의 철학은 보지 못했다. 빌바오 시장에게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한 관광객 유치가 목적도, 철학도 아니었다. 그는 빌바오가 관광객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도시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외부인이 아니라 시민의 위한 공간이 있는 도시를 꿈꿨다. 시민들이 즐거울 때 외부인도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는 시민들이 무단횡단으로 건널 수 있는 도로가 있고, 미술관 옆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빌바오 중심가에는 2차선 도로 옆 보도가 도로보다 넓다. 이 모든 것은 관광객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배려였고 그의 철학이었다.

도시는 계속 변하지만 도시에 대한 철학은 필요하다. 도시에 대한 철학의 부재 때문에 시민을 위한 공개공지도 사라지고 초고층 빌딩도 논란이 되는 것이다. 무학과 정도전의 대결에서는 정도전이 승리했고, 그의 철학은 600년 동안 이어진 우리나라 도시의 근간을 만들었다. 이제 곧 제주의 도시를 책임질 새로운 지사가 선출된다. 제주의 수장으로서 훌륭한 인품과 능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도시에 대한 철학이다. 차분하게 오늘을 사는 시민의 삶의 터전인 도시에 대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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