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태림 수필가·논설위원

지난 10일 모 방송을 보다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새 국무총리를(지난 24일 자진 사퇴했지만) 내정한 날이라서, 방송국마다 총리 내정자에 대해 출연자들의 의견을 묻고 답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방송국 역시 내정자에 대해 의견들을 나누고 있었다. 지금까지 매스컴에서 거론되던 인물이 아니라, 뜬금없이 발탁된 깜짝인사라서 나 역시 내정자에 대한 궁금증이 무척 컸다. 컴퓨터 속에서 가끔 그의 칼럼을 몇 번 읽었던, 모 신문사 주필이라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전부였다.
 
사회자가 총리 내정자에 대한 인물평을 점수로 적어 달라는 주문을 했다. 60점 이하는 낙제점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모 변호사는 '61점', 모 대학교수는 점수로 표시하지 않고 '보통'이라고 적은 검정 판을 내보였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각각 자기가 적은 평가에 맞게 장황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한참을 설명해 나갔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 더욱이 점수로 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물건들은 일정한 가격으로 평가된다지만, 그것도 장소나 시간, 또는 필요에 따라 들쑥날쑥 천차만별로 값이 달라진다. 이처럼 물건도 한마디로 그 실체나 진수를 값으로 매길 수 없거늘 하물며 인간을 점수로 평가하라니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모 방송국 기자라는 직함을 가진 사회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묻고 있는지, 또 묻자마자 순식간에 점수를 적어내는 사람들이 제 정신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총리직을 수행한 다음에 그의 직무능력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상식이다. 직무 기간 동안 그의 활동과 능력의 유무, 공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들이 주변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걸 바탕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그런대로 공감하는 면도 있겠지만, 아직 한 발도 때어놓지 않은 내정자에게 이런 혹독함을 안기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66년을 살아온 내정자(1948년생)의 장구한 인생역정과 그 인격체에 대해 묻자마자 한 순간에 '61점'으로 낙제점을 겨우 넘어서게 평가하는 그 변호사의 통찰력이 신묘하기 그지없다. 그는 내정자를 낳은 어머니인가, 아니면 내정자를 조립한 조물주인가. 아니면 한 평생을 곁에서 살아온 아내인가. 아버지뻘인 윗사람을 전 국민이 시청하는 마당에서 안색 하나 변함없이 훌훌 가볍게 점수 매기는 그 신통력이 놀라울 뿐이다. 
 
느닷없이 자신에게 내려진 혹독한 과소평가가 국민들 앞에 장황하게 설명되는 그 방송을 보고 있었다면 내정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금까지 한 올 한 올 성심껏 쌓여온 인생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허탈과 낙망으로 눈앞엔 안개만 보였을 것이다. 흔한 말로 바로 멘탈붕괴다. 입장이 바뀌어 평가자였던 그 변호사가 어린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매긴 점수, 61점을 받았다면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 내정자의 심중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어려운 것이고, 그래서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하면 검은색도 엷어져서 회색으로, 회색이 엷어져서 끝내는 흰색으로 만들기도 한다. 없던 거짓말도 사실로 만들고, 있던 사실도 거짓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말은 무서운 것이다.
 
다음날부터 언론과 방송은 내정자의 신상털기에 나섰고, 그는 하루아침에 '친일, 반(反)민족자'로 낙인찍혀 버렸다. 억울하기 이를 데 없다던 내정자는 청문회를 통해 자신을 소명(疏明)하겠다고 했지만 그 기회마저 가질 수가 없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총리 내정자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지금까지 후회 없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내정자들의 낙상(落傷)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등용문(登龍門)에 들어섬을 축하는커녕 결사반대한다는 가족들의 외침이 아이러니가 아니라는데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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