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2000 탐라굿 입춘굿놀이를 앞두고 ‘탐라왕이 ‘친경적전(親耕籍田)하는 풍속’을 이어왔다는 입춘굿놀이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1850년대 문헌자료가 발견,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교육박물관(관장 강문언)이 장주열 전 부교육감으로부터 기증받은 고서를 정리하는 가운데 발견한 이 자료는 가로 26.2㎝·세로 10㎝·두께 0.7㎝의 ‘공령(功令)문’중 일부.‘공령’은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유생이 중국과 한국의 옛 시 등을 통해 문장체계를 익히는 서책으로 지금으로 치면 대입 수험생의 암기장과 비슷하다.

 그 안에서 ‘親耕籍田而率天下之民(친경적전이솔천하지민)’제목의 시구가 발견된 것.‘친경접전(親耕籍田)’이란 글귀는 이원조의 「탐라록」에 기록된 ‘춘경(春耕)’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탐라록」중에서 1841년 입춘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살펴보면 ‘춘경(春耕)의 풍속은 고대 탐라왕때의 ‘친경적전(親耕籍田)’의 유습’이라 적고 있다.이는 탐라국 이후 1841년까지 왕이 몸소 ‘밭갈이’하는 모습을 보여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가 전승되고 있었다는 것이 한학자들의 주장.이같은 내용은 김두봉의 「제주도실기」(1932)에도 실려있다.

 한학자인 오문복씨는 “종이 등을 살펴봤을 때 1850년대 것이 확실하다”며 “당시 제주에서 열렸던 과거(별시·승보시)에서 ‘귤’과 ‘풍속’을 시제로 한 것이 많았다.이 시는 예전에 나왔던 시제를 놓고 과거준비를 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오씨는 또 “다른 사람의 글을 베껴 썼을 경우는 아래 시가 만들어진 해와 지은 사람의 이름을 쓰는 것이 예의였다”며 “과거 시제로 채택됐는가 하면 시험을 준비해 이렇듯 스스로 시를 만들었을 정도로 당시 ‘입춘굿’은 제주를 대표하는 풍속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고창석 제주대 교수(사학과)는 “1841년 「탐라록」 내용 말고는 ‘입춘굿’과 관련한 뚜렷한 사료가 없는 상태에서 관련 글귀가 있는 1850년대의 ‘공령문’ 발견은 충분히 의미있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입춘굿놀이는 12일 오후6시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의 낭쉐고사를 시작으로 13일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탑동해변공연장에서의 거리굿,입춘굿,입춘탈굿놀이 등 한바탕 잔치로 꾸려질 예정이다. <고 미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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