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학교 사회복지과 겸임교수·논설위원

기초연금 제도가 지난 7월 드디어 시행됐다. 소득하위 70%의 노인 대부분이 20만원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 모든 노인에게 준다고 했는데 잘사는 노인 30%는 제외됐다. 나라의 곳간을 생각한다면 수긍이 간다. 그런데 극빈층인 기초생활수급자노인도 전혀 혜택이 없다. 어려운 노인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법이 기초연금인데 그 취지에 맞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자노인의 경우도 기초연금은 준다. 매월 기초연금 20만원이 통장에 입금된다. 그런데 기초연금 이전에 매월 지급해 왔던 생계비에서 기초연금으로 받은 20만원을 빼고 나머지 금액만 입금된다. 기초연금 제도가 실시됐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에게는 조삼모사(朝三暮四), 통장 결산은 말짱 도루묵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대통령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원을 노령연금으로 주겠다는 대선공약에서 출발했다. 이후 많은 논란 끝에 소득상위 30%에 해당되는 노인은 기초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잘사는 노인을 기초연금에서 제외하는데 따른 저항과 반발은 대단했다.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공약먹튀'란 막말까지 거론되는 지경이었다. 정계가 들썩거렸고 대통령이 사과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노인은 이와 다르다. 부자노인들에겐 양해와 설득의 과정이 있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배제되는 사실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모든 노인'이라 하니 당연히 자신도 포함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철석같이 믿었고, 손꼽아 기다렸다. 20만원의 가치가 여느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큰법, 기초연금의 장밋빛 약속은 '희망고문'이 돼 가난한 노인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제기나 항의의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한다. 조직화해 이슈화시켜 나갈 힘이 없기 때문이다. 몇몇 사회복지사들이 당사자들과 관련단체등과 연대해 촛불집회를 열고 시위하고 있지만 그 세계에서만 맴도는 소리일 뿐, 정치권의 관심은 건성이고 정부는 완강하다. 
 
재산과 소득이 없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혈육이 없는 사람이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다. 정부로부터 받는 현금은 최대 월 48만8063원, 집세 주고나면 밥 세끼 해결도 어렵다. 거동할 수 있으면 폐지라도 주워다 판다. 할아버지가 끄는 손수레에 가득 실으면 100㎏, 등 굽은 할머니가 끄는 카트에 자기 몸 크기만큼 폐지를 쌓아도 50㎏이 넘지 않는다. 종일 5000원 벌이도 쉽지 않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대로 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원칙에 따르고 있다고 한다. 법대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의(正義)는 뱀처럼 오직 맨발인 사람들만 문다'. 이말은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가 자신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저주받고 공격받고 있다"고 뒤틀린 정의를 항의한 데서 나온 말이다. 법이 힘없는 사람에게 가하는 부당함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9.2%로 OECD평균인 12.4%의 세배가 넘는다. 세계1위의 노인 자살률, 자살충동원인 1위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노인들에겐 아픈 몸이나 죽음보다 '가난'이 더 두렵다. 어렵게 살아가는 노인을 사회가 돌보기 위해서 마련한 법이 기초연금이다. 그런데 삶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노인에게는 혜택을 주면서 빈곤의 나락에 서 있는 노인은 외면하고 있다. 과연 올바른 정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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