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환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오일장에서 병아리를 3마리 사왔다. 병아리는 물을 마시면 수시로 똥을 싸대었다. 조금이라도 게으르면 닭똥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집안 식구는 견딘다하더라도 이웃에게 미안해 청소를 안할 수가 없다. 
 
병아리들은 그런 정성이 통했는지 1주일이 다르게 커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자 클린하우스 주변에서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묶어뒀던 강아지를 풀었다. 처음에는 병아리를 잘 지키는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강아지는 주인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뒤를 쫓아 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드디어 일이 터졌다. 새벽에 모이를 주러 갔더니 3마리 중 1마리만 달려나오는 것이다. 주변을 찾아보아도 닭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해가 떠오르면서 출근하는 차가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하자 차 밑에 숨겨져 있던 병아리의 사체가 드러났다. 
 
나는 두 마리를 검은 비닐 속에 넣고 클린하우스로 가서 버렸다. 주변에는 범인으로 여겨지는 고양이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남은 1마리의 병아리를 지키기 위해 동네 약국 약사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고양이를 죽일 약을 달라고 했다. 약사는 특별히 고양이만 죽이는 약이 없다며, 웃기만 한다. 
 
그날 저녁에 딸에게 약국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딸은 그렇다고 고양이를  죽이려 하느냐고 화를 낸다. 그러다가 우리 강아지가 먹으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고양이가 배가 고팠기에 병아리를 잡아먹은 것은 자연의 섭리다. 내가 병아리를 키워 잡아먹으려 한 것은 나의 욕심이다. 
 
사실 나는 유월 스무날(닭잡아 먹는 날)을 기다리다 고양이에게 나의 몫을 빼앗겼다. 내가 먹을 병아리를 고양이가 먼저 실례한 것 뿐이다. 
 
고양이의 행위는 자연의 섭리요, 나의 행위는 욕심으로 인한 자연의 섭리에 대한 도전이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이순신과 아들이 나눈 대화의 한 장면이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떻게 울돌목의 회오리를 이용할 생각을 해냈느냐고 묻자, 이순신은 천행(天幸)이었다고 한다. 
 
이순신은 자신이 탄 배가 회오리에 빨려들어가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이었다. 그 순간, 백성들이 모여들어 힘을 합쳐 그 배를 회오리에서 끌어낸다. 이순신은 백성이 자신을 살려낸 것을 천행이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순신은 아들에게 묻는다. 너의 생각엔 무엇이 천행이었겠느냐고.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회오리는 자연의 원리였고, 이순신은 그걸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내비친 말이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으니, 이순신은 하늘이 준 행운을 받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욕심은 회오리라는 자연의 섭리를 어겨 낭패를 보았다. 
 
병아리를 고양이에게 빼앗겼을 때는 나의 욕심 때문에 자연의 섭리에 도전하려 했었지만, 명량을 본 후는 욕심을 버려야 천행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좋은 작품은 그래서 가치가 있다. 명량을 본 관객이 왜 1700만 명을 넘었는지 알다가도 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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