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스토리]서문공설시장 포목장 50년 진순희 서문한복 대표

삯바느질로 시작…돌 옷에서 수의까지
"하귀·애월 단골도 찾았었다" 아쉬움
'시설 현대화'이후 시장다운 맛 흐려져
"시장 없어진다는 건 인정 상실 의미"
 
▲ 서문공설시장에서 50년 넘게 한복을 만들고 있는 진순희 대표는 시장이 죽는 것은 인정이 없어지는 증표라고 말한다. 고 미 기자
"예전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참 많았지. 집안 혼사가 있다고 한복을 지어간 어머니가 며느리 손을 잡고 손자 돌옷을 맞춰가고 나중에는 며느리가 와서 어머니 수의를 짓고…. 지금은? 에효"
 
얕으면서도 긴 한숨은 그간의 변화를 함축하고도 남는다. 서문공설시장 포목장 최고참인 진순희 서문한복 대표(75)가 펼쳐낸 기억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다. '시장 경력이 몇 년이냐 되셨냐'는 질문에 "그 때 업고 다녔던 갓난쟁이가 이제 쉰 한 살이 됐지"하신다. 줄잡아 50년이 넘었다.
 
공무원이던 남편 월급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웠던 터라 남보다 낫다는 손재주 하나 믿고 시장에 가게를 냈다. 5평(16.2㎡) 남짓한 공간에서 거의 온종일 바느질을 했었다. 기성복이 나오기 전이다 보니 집안 대소사에서부터 소소한 수선까지 일이 많았다. 
 
"한 집 혼수만 해도 10벌 이상이었어. 좋은 날을 본다고 일이 몰리기 일쑤였지. 그 것뿐인가. 환갑이며 칠순을 한다고 가족이 한꺼번에 옷을 맞추고 했어" 그 때만해도 시장 골목이 미어터질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상호만 간신히 쓴 작은 간판이 다닥다닥 달려있어도 용케 단골을 찾고 또 만들었다.
 
진 대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니 '한복집'이 달라보인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제주 사람들의 통과의례가 함축된 공간이었다. 태어나 자라 누군가와 부부의 연을 맺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고, 자식을 낳아 키워 결혼시키고, 건강과 오랜 해로에 대한 보상에 이어 생을 마감해 이승을 떠날 때까지 '의(衣)'는 우리 삶과 밀접하다. 한 공간에서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던 '행운'은 이제 귀해졌다.
 
진 대표는 "지금은 '한복'을 지어 입는 것이 아니라 빌려 입는 것으로 안다"며 "그만큼 사람 아는 일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여기 앉아서 해안동 너머 하귀며 애월 지역 일도 들었다"던 진 대표의 말은 이미 과거형이다.
 
"정이 들고 난다는 건 다른데 아니라 사람(단골)을 만든다는 얘기야. 시설현대화를 하면 뭐하냐. 사람들이 오고 가지를 않는데. 시장이 죽는다는 건 장사를 못하게 됐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인정이 없어졌다는 증표"라는 진 대표의 말이 채찍처럼 들린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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