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태림 수필가·논설위원

   
 
     
 
지난 10월21일은 1994년 한강의 성수대교가 붕괴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승영씨(당시 서울교대 3학년)의 이야기와 그녀의 생전 소원을 이뤄내는 최만재(목사)원장의 감동적인 활동 모습이 어지럽고 팍팍한 현실을 씻어내는 소나기처럼 소쇄하고, 꽁꽁 언 얼음을 녹이는 봄볕처럼 따스하게 마음 속 깊이 와 닿았다.

그날 이승영씨는 교생실습 닷새 째 버스를 타고 강북의 초등학교로 출근하던 길에 다리 상판과 함께 2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딸의 유품을 챙기던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일기장에서 '내가 일생동안 하고 싶은 일'이란 14가지 소원을 보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딸을 대신하여 이루기로 결심한다.

' 장학금을 만든다. 복지마을을 만든다. 한 명 이상 입양한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이동도서관을 만든다….'

승영씨 어머니는 딸의 사고 보상금 2억5000만원 전액을 남서울교회에 기탁해 가난한 신학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을 만들었다.

최만재씨는 나이 마흔에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신학생이었다. 쪽방에 살면서도 2000년부터 아내와 함께 부평 뒷골목에서 매주 무료 급식을 했다. 파지를 주워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 11명을 모시고 무허가 건물에 월세 20만원짜리 세를 얻어 '작은 손길 공동체'를 세웠다.

학비에 힘겨워하던 그는 다행히도 '승영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4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아 2003년 대학원을 마치고 목회자가 됐다. 그는 승영씨의 소원 중 '복지마을을 만든다'는 꿈은 내가 대신 이뤄주겠다고 다짐했다. 현재의 무허가 건물의 보금자리는 어르신들에게는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는 매일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다. "우리 어르신들을 편히 모실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기도의 정성으로 하늘의 승영씨가 도운 것일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가 모시던 어르신들 중 80대 구씨 할아버지가 믿기 어려운 말을 꺼냈다.
" 용인땅 여기에 있는 야산과 논밭이 모두 내 것이네". 할아버지는 십수억원어치 자산을 가진 갑부였다.

구씨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당신의 기도를 들었다"면서 "내 산과 논밭을 모두 목사님과 우리 공동체의 명의로 돌리고 싶다"고 했다. 최씨는 만류했고, 구씨 할아버지는 고집을 꺾지 않았지만, 끝내 최씨는 논밭 대신 공동체 건물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야산 일부만 받았다. 그후 3년만인 2007년 11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금의 터전에 건평 192평 규모의 '작은손길 공동체 요양원'이 마련됐다.

요양원 완공을 보지 못한 채 구씨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숨을 거두기 전 "요양원이 지어지면 돼지 잡아 마을 잔치라도 하라"며 건넨 100만원과 최씨 부부에게 직접 골라준 5돈짜리 금반지가 할아버지가 남긴 값진 선물이라고 했다.

요즘도 요양원 거실은 TV 앞에 둘러앉은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최씨는 "구씨 할아버지덕에 승영씨에게 약속했던 진정한 복지마을을 완성할 수 있었다"면서 "이것도 승영씨가 하늘에서 꾸준히 기도하고 응원해준 덕"이라고 했다. 최씨 부부는 요양원을 운영하며 무료 급식도 15년째 계속하고 있다.

최씨 부인 김씨는 매년 10월만 되면 가장 힘들 때 힘이 돼준 승영씨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며 조용히 읊조린다.

"승영장학생 89명이 지금도 각지에서 묵묵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승영씨라는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20년이 지나면서도 계속 열매를 맺고 있는 셈이죠. 살아있는 우리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데, 진정 살아있는 건 그분 아닌가 싶어요."

하늘의 천사와 땅의 사도(使徒)가 서로 손잡고 이뤄내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요즘같은 험한 현실 속에서도 빛을 내는 한 세상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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