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장

   
 
     
 
내년도 도민 살림살이·행복지수 등을 가늠할 민선6기 원희룡 제주도정의 예산안 심사를 목전에 두고 집행부와 도의회의 힘겨루기가 심상치 않다. 전임 도정 시절에도 매년 11월부터  12월까지 두달간 통과의례처럼 의회와 집행부가 재원 배분의 적정성 등을 놓고 논쟁을 벌이지만 올해 분위기는 '냉기류'를 넘어 '태풍의 눈'처럼 비춰진다.

원 도정이 첫 제출한 도의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 분위기가 '태풍의 눈'처럼 비춰지는 것은 지난달 치렀던 양측의 '예산 협치' 갈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구성지 의장의 예산편성 사전협의 제안에 대해 박영부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이 즉각 '수용불가'로 반박하면서 불거진 갈등은 예산안 심사를 앞둔 전초전처럼 양측간 대립을 심화시켰다. 구 의장이 "예산편성지침을 만들기 이전에 의회와 사전 협의를 거치는 등 처음부터 도정과 의회가 협의, 투명하고 효율적 예산을 만들자"는 제의에 박 실장은 "법률적으로 분리된 예산편성권과 심의권을 한꺼번에 행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거절했다.

여기까지는 양측 주장 모두가 타당성을 갖고 있기에 '생각의 흥정'처럼 조정이 가능할 것 처럼 보였다. 구 의장의 제안은 '전임 도정에서 반복됐던 예산안 삭감·민감보조금 증액 등의 잘못된 관행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박 실장의 반박은 '법률로 규정한 고유 권한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모두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박 실장이 거절하면서 거론한 '재량사업비 부활'이 화근이 됐다. 구 의장이 제안하지도 않은 재량사업비 부활을 박 실장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발표하고, 이어 시민단체가 "구 의장의 예산협치 제안은 재량사업비 부활 꼼수"라고 공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구 의장이 "자괴감을 느낀다"고 집행부를 비판한 후 박 실장이 사과, 갈등이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제주도가 지난 12일 예산안 심의를 의회에 요청한후 갈등이 더 불거지는 모습이다. 도가 "민생안정, 새로운 성장과 더 큰 제주 실현 예산에 중점을 두었다"고 편성의 의미를 제시했지만 구 의장은 "사회복지예산이 감소한 반면 일반공공행정분야 예산은 증가, 행정 편의·비효율 편성"이라고 지적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도정과 의회의 일촉즉발 대치로 결말을 쉽사리 예측할 수 없지만 양측간 갈등의 골만 깊게 패일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 도의회가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각종 사업의 실효성·적정성·공정정 준수 여부 및 주민 의견 반영 여부를 살피겠다고 밝힌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규 사업은 타지역의 사례를 베낀 낭비성은 없는지, 각 사업별 예산은 주민의견을 반영했는지 등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해당 부서에 대해 주민의견을 반영한 서류 제출까지 요구해야 한다.

집행부도 자신들이 편성한 예산안이 '만점'이라는 착오를 버려야 한다. 행정조직 유지 목적으로 시설예산을 편성한 결과 해당 주민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한 문제가 종종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노인복지예산을 편성하면서 경로당을 짓거나 보수할 것인지, 아니면 노인 일자리를 더 늘리는데 쓸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노인들에게 돌려줘야 원 지사가 밝힌 '도민과 함께하는 수평적 협치 실현'이 가능하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도민행복지수 향상 등의 '생산적 의사결정'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의회·집행부간 충분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논쟁을 벌이면서 충분히 설명하지 않거나, 설명하더라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도민 불신을 자초하게 된다. 예전처럼 서로가 구체적 설명은 없이 실랑이만 반복하면 지켜보는 도민들은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예산안 심사가 도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감정의 찌꺼기를 먼저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민을 위한다고 밝힌 집행부의 예산안 편성이나 도의회의 심의 각오가 '허언'(虛言)으로 끝난다. '돈'이 칼을 뜻하는 '도'(刀)에서 유래된 것 처럼 뜻 있는 곳에 사용하면 유용한 칼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도민은 물론 도·의회의 생명을 위협하는 '칼'처럼 무서운 흉기로 변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