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커스 / '고령사회 제주' 노인복지의 그늘] 르포 2 - 한끼로 버티는 노인들
고령 저소득 홀몸 노인 증가…달방·쪽방 생활
자원봉사 도움 없이 끼니 거르는 일도 허다해
올해 들어 수은주가 가장 밑으로 떨어졌던 1일, 월 18만원짜리 여인숙 '달방'에서 만난 서기진 할아버지(79)의 얼굴에 뜻 모를 표정이 얹어졌다. 서 할아버지는 자원봉사자들이 건넨 도시락을 받아 능숙하게 간이침대 밑 소형 냉장고에 나눠 넣었다. 도시락 지원을 받은 지 벌써 6~7년이 되다보니 어떤 것을 먼저 먹고, 어떤 것은 나중에 먹을지 쯤은 훤하다. 서 할아버지는 "이 것(도시락)으로 잘 하면 일주일도 난다"며 "그냥 굶는 날도 많은데 이정도면 호사"라고 말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크지만 수년째 가족 대신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사정이 편할 리가 없다.
그런 서 할아버지 사정은 박승계 할아버지(70)와 비교하면 오히려 나을 정도였다. 박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한 평 반 짜리(4.9㎡) 쪽방은 성인 한 사람이 몸을 누이면 더 여유가 없을 정도로 좁아 도시락도 간신히 전달했다. 박 할아버지 역시 이날 제공받은 도시락으로 일주일을 산다. 박 할아버지는 "차가워도 먹고, 상해도 먹고 한다"며 "(자원봉사자들)고생시키면 안되는데…"하고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도시락 마중을 나온 고옥순 할머니(89) 방은 말 그대로 냉골이었다. 이불 몇 겹으로 추위를 피하던 자리를 애써 자원봉사자들에게 양보하던 고 할머니 옆에는 약 봉지가 한 가득이다. "정부 지원금이 나와도 거의 다 약값으로 쓴다"는 고 할머니 가계부에는 아예 식비 항목이 없다.
이날 하루 배달된 도시락은 230개. 제주특별자치도적십자회 청솔봉사회의 몫이란 점을 감안하면 도시락 하나가 절실한 고령 노인들의 수는 더 많다.
제주발전연구원의 '고령사회 도래에 따른 노후 생활 안정화 전략과 대응과제'에 따르면 제주지역 노인 10명 중 3명(34.8%)은 경제적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건강(36.2%)이었고 생활비 부족으로 생계 곤란을 느끼는 경우도 14.7%나 됐다. 주민등록상 저소득층 홀몸 노인만 도내 전체 노인의 5.8%(4597명)에 이른다.
양명순 청솔봉사회 총무는 "일주일에 한 번 도시락 배달로는 모자란 상황이지만 이런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며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가워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현실적인 지원 장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영진 기자
고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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