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커스] '고령사회 제주' 노인복지의 그늘
르포 3 / 추위에 떠는 노인들

▲ 양민근 할아버지(가명)가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 틈새로 스며드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을 여러 겹 덧 대놔도 겨울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괴롭히고 있다. 고경호 기자
컨테이너·비닐하우스 등 주거환경 취약
수급자도 탈락…생활고로 눈시울 붉혀
행정·지자체 지원 못 받는 '사각지대'도
 
체감온도가 영하권으로 떨어진 2일 제주에 불어 닥친 맹추위는 철제 컨테이너 안으로도 스며들었다.
 
매섭게 날리는 눈만 피할 수 있을 뿐 밖과의 온도차가 얼마 나지 않는 이곳이 박철수 할아버지(76·가명)에게 허락된 유일한 거처다.
 
두꺼운 남방에 잠바를 두개나 껴입은 할아버지는 대화를 나누며 연신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철제 외벽 사이로도 바람이 들어오는데 옷 몇 겹으로 추위를 피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하나 꺼내 보였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됐다는 행정의 통보문이었다.
 
노인일자리사업마저 종료된 할아버지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주머니부터 헐거워졌다.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답대신 웃음을 보인 할아버지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돈이 없어서 가장 힘들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버지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곳저곳 공사장을 다니며 밥은 먹고 살았다"며 "척추를 다친 후 일을 못나가게 되자 자연스레 끼니부터 줄이게 되더라. 어금니도 깨져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병원비는 엄두도 안난다"고 얘기했다.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흘러내린 눈물을 훔쳐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는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눈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친 오후 하천 옆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양민근 할아버지(81·가명)가 장작을 손질하고 있었다.
 
양 할아버지는 땅을 갖고 있다. 공원지구로 묶여있어 팔 수 없는 땅이다. 이 땅 때문에 할아버지는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돈 한 푼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없느니 만 못한 땅'인 셈이다.
 
할아버지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할머니에게 땅 일부를 내주고 조립식 집을 지어 살게 했다. 그렇게 할머니가 지원받는 연금으로 이웃한 두 노인이 살아가고 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를 스스로 해결한 것이다.
 
비닐하우스에는 낡은 가구와 연탄, 허름한 살림살이가 자리하고 있다. 비닐 틈새로 스며드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여러 겹을 덧 대놔도 겨울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괴롭혔다.
 
비닐하우스 전체를 휘감은 찬 기운에 뚝뚝 떨어지는 녹이 섞인 빗물이 할아버지의 겨울나기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겨울이 제일 힘들다. 그저 죽지 못해 살 뿐"이라며 "옆집 할머니를 찾아왔다가 잠시 우리집도 들렸다가는 돌봄 아줌마들을 기다리는 게 유일한 삶의 낙이다"고 말했다. 고경호 기자

양한식 제주도 노인장애복지과장

"노인들의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해 현장 중심의 맞춤형 노인복지를 실현토록 노력하겠습니다"

양한식 제주도 노인장애복지과장은 "최근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문제는 도내뿐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사"라며 "특히 제주는 고령화 속도가 다른 지방보다 빨라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에서는 기초연금과 노인일자리사업, 노인돌봄서비스 등을 통해 꾸준히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런 지원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건강한 노인이 상대적으로 병약한 노인을 돕는 독거노인 친구 만들기 사업과 119와 연계한 응급안전돌보미사업 등은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양 과장은 "제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노인고용촉진장려금과 장수수당 지급, 이·미용비 지원, 틀니 및 보청기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노인복지 시책과 시스템을 구축, 노인들이 살기 좋은 제주를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노인에 대한 물질적 지원은 물론 안부전화와 방문 등의 정서적 지원방안도 강화해 노인들이 고독과 외로움 등으로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현장 중심의 맞춤형 노인복지 서비스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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