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태림 수필가·논설위원

   
 
     
 
벽에 걸렸던 12장 달력이 이제 0한 장 남았다. 벌써 세모다.

세월이 쏜살처럼 빠르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초하룻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새해 소망을 빌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제 며칠 후면 또 새해다. 2014년 마지막 달력을 내리고 2015년  을미년 새 달력을 걸어 놓는다.

어렸을 적, 50년대와 60년대 중반까지의 달력은, 1년을 한 장에 모아놓은 단장짜리 달력이었다. 국회의원님이 지역 주민들을 위해 나눠주는 달력이다. 3등분한 가운데 상단에는 국회의원님의 근엄한 표정의 사진이 자리 잡고, 그 아래에는 일 년의 농사 정보를 24절기에 맞춰 빼곡하게 안내해 주고 있었다. 좌우에는 각각 여섯 달씩 1년 열두 달이 모두 한 장에 들어있는 달력이다.

달력은 그 집안의 정보센터였다. 보거나 들을 것이 없던 그 시절, 사람들은 매일 달력과 얼굴을 맞대고 생활했다.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친척이나 이웃의 경조사와 마을 공동의 행사와 나들이를 잊지 않기 위해 해당 날짜에 동그라미, 삼각표, 네모꼴 등으로 표시하여 사회공동체에 빠짐없이 동참하며 살아왔다. 달력은 바로 삶의 일정표였다. 그래서 한 해가 저물 때면 달력에는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온갖 표지로 얼룩졌다. 일 년의 생활사가 한 눈 앞에 펼쳐지고 한 집안의 역사로 남겨졌다.  밥풀로 닥지닥지 붙여놓았던 달력을 때어낼 때는 왠지 뭔가 아쉽고 감회도 깊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몇 년간  보관하면서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실마리가 되곤 하기도 했다.

국회의원님의 홍보용 달력은 그 효과가 특별했다. 매일마다 달력을 보면서 마주친 그 근엄한 표정의 사진은 누구에게나 지우지 못할 정도로 각인돼 버렸다. 그 분들은 돌아가시고 반세기가 흘렀지만 지금도 당시의 국회의원님들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를 정도다.

요즘의 달력은 예전에 비하면 그 효용성이 많이 떨어졌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마다 날짜와 요일, 시간이 나오고, 나들이 일정을 기록해 두면 굳이 달력을 볼 필요가 없다. 매우 고급스럽게 만들어 놓았지만 그저 벽장을 장식하는 치레용으로 걸어두는 정도로 미미해졌다.

연말이면 평소보다 웅성대고 황홀해진다. 부산 광복동에서 매해마다 열리는 트리축제에는 6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한다. 휘황찬란한 갖가지 꼬마전등들이 내비치는 아름다움 속에서 한껏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다. 거리나 가게마다 성탄절을 기리는 성탄트리에서 명멸하는 오색 불빛이 밤거리를 황홀하게 수놓고 있다. 일 년의 모든 것을 눌러놓았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듯 전국은 불꽃놀이를 하듯 타오르는 불빛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한쪽이 황홀하면 그 반대쪽은 어두운 것이다. 요즘의 매서운 겨울 한파보다 더욱더 추위를 타는 사람들이 지치고 외롭게 연말을 보내고 있다. 매해마다 모아지던 온정의 따스함이 예전에 비해 많이 식어졌다고 한다. 훈훈했던 인정의 온도계가 목표치를 밑돌고, 듬직했던 자선냄비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먹고 마시던 망년회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봉사활동으로 대신한다는 단체나 회사가 많이 늘었다는 것이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한줄기의 위안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밝고 신선했던 소식보다는 어둡고 침울했던 일들이 많았던 한 해다. 보는 것마다 맥 빠지고 듣는 것마다 힘들게 했던 한 해다.

풍성했던 넓은 잎을 다 떨구고 몰아치는 삭풍 속에서 온몸으로 떨고 있는 나목들의 여윈 몸짓처럼 오늘의 현실은 삭막하다. 그러나 정원에는 낙엽수보다 더 많은 상록수들이 칼바람 속에서도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다. 더욱이 넉넉하고 짙푸른 잎사귀 속에서 송이마다 붉디붉게 타오르는 동백꽃의 정열적인 에너지가 새 해의 전조(前兆)처럼 선명하다. 분명히 새 해엔 달라질 거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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