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스토리] 양봉훈 제주산악회 회장

▲ 37년을 한라산과 함께 해온 양봉훈 제주산악회 회장.
37년간 한라산과 함께 생활해
초창기 훈련받아야 입산 허가
장비 없이 직접 만들어 쓰기도
 
양봉훈 제주산악회 회장(56)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가운데 37년, 강산이 적어도 4번을 바뀔 동안 한라산과 함께 해왔다.
 
그가 처음 산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한라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등산로는 많았지만 대부분 자연스럽게 형성된 코스였다. B코스는 아예 말이나 소가 지나다녔던 흔적을 밟아 가는 것이어서 매번 산에 새로 길을 내는 성취감도 컸다. 솥 등을 지고 가 야영을 하며 직접 밥을 해먹었던 추억도 새롭다. 이제는 다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양 회장은 "지금이야 정해진 코스로만 오르내리다 보니 뭐가 어떻게 변했는지 꿸 정도가 됐다"며 "삼각봉 지대나 개미등 적송지대 상층부 부분에 서면 제주시가 한눈에 들어왔었는데 지금은…"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산만 변한 것은 아니었다. 양 회장은 "사람이 가장 많이 변했다"고 했다.
 
그가 처음 산에 오를 때만 해도 몇 차례 산악훈련을 통해 준비를 단단하고서야 등반 허락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오르내린다. 예전에 생각도 못했던 고가의 등산장비가 보편화된데다 기능성 아웃도어 의류는 평상복이 됐다.
 
양 회장은 "등산복이라고 할 만 한 게 있었나. 장비도 없어서 빌리거나 심지어 만들기도 했다"며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운이 좋은 셈"이라고 말했다.
 
그로 인한 해프닝도 많았다. 등산에 맞지 않은 복장을 한 일반인들을 도운 일이 1순위다.
 
"한 번은 정상 부근에서 입술이 파랗게 질린 사람이 쭈그리고 있더라고. 딱 보니 청바지 차림이야. 저체온증이구나 싶었지. 그래서 가지고 간 여벌 옷을 입히고 손발을 문지르고 해서 간신히 하산한 일이 있어. 산을 쉽게 본 때문이지. 청바지를 입고 산에 오르면 다리 사이가 쓸리는 것은 물론이고 체온 유지가 어려워 낭패를 보기 십상인데 일단 편하니까 입고 오르는 거지"
 
이정도는 사실 약과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라산 산행 중 사고도 증가했다. 이를 위해 산악회를 중심으로 매년 '한라산만설제'를 봉행한다. 올해 큰 책임을 맡았던 만큼 42번째 만설제에 정성을 들였다.
 
양 회장은 "사람들이 한라산에 오르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함부로 대하는 것이 문제"라며 "산을 내게 맞추기 보다 나를 산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반복되는 쓰레기 문제와 준비없는 산행으로 인한 등반사고에 대한 우려다. 양 
회장은 "산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본 모습을 보여준다"며 "적어도 등산화나 보온자켓, 한라산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 뒤 올라야 한다"고 귀띔했다. 한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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