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엊그제 설 연휴가 끝났다. 대부분 다시 일터에서 가정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겠지만 길었던 연휴의 후유증에 아직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 설에는 전국에서 3300만명이 고향을 찾아 대이동을 했다하니 가히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이야 이처럼 온나라가 떠들썩하게 보내는 설이지만 음력 정월 초하룻날인 지금의 설날이 온전히 그 이름을 갖고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불과 30년에 지나지 않는다.

음력설을 쇠던 우리나라에서 양력 1월1일이 공식 설이 된 것은 을미개혁 후인 1896년부터다. 일제강점기시대, 한일병합(1910년)으로 식민통치가 본격화되면서 일제는 우리 문화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 명절을 부정하고 일본 명절을 쇨 것을 강요했다.

특히 우리 설을 '구정'(옛날 설)이라 깎아내리면서 일본 설인 '신정'(양력 1월 1일)을 쇠도록 했다. 이때부터 '신정(新正)'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일제는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설 1주일 전부터 방앗간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우리 국민들은 양력설을 '왜놈 설'이라며 음력설을 지냈다.

일제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곡절을 겪었다. 박정희 정권 때까지는 음력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5년 정부는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1989년에야 정부는 음력설을 '설'이라 명명하고 3일간 휴무를 주는 대신 양력설에는 하루 휴무를 정했다. 이렇게 해서 설은 비로소 제자리를 잡게 됐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양력과 음력을 병용하고 있다보니 우리는 새해를 두번 맞는 셈이다. 어찌보면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2월도 다 끝날 무렵에 다시 새해가 시작된다니 큰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다.

굳이 두 새해를 비교하자면 양력 새해가 한해의 시작을 계획하고 다짐하는 시간이라면 음력 새해는 다소 시들해지는 그 계획과 다짐들을 다시 다잡아보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양력과 음력 사이에 생기는 그 기간을 새해 계획과 다짐들에 대한 시험운행 기간으로 삼아 두번째 새해에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성 있는 계획과 다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양력 1월과 2월에는 졸업식이나 설날 등이 있어서인지 한해가 온전히 시작된 것 같지 않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직 끝마쳐야 할 일들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설이 지나서야 진정한 새해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한 온라인쇼핑몰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양력 1월1일과 음력 1월1일 2주전의 금연·다이어트 관련 용품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금연용품, 다이어트식품과 용품, 스포츠패션 등 모든 상품 매출이 양력보다 음력 1월1일에 평균 73% 더 높게 나타났다.

양력으로 해가 바뀌는 1월1일보다 음력설에 새해다짐을 더 확고하게 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양력으로 보면 벌써 한해의 6분의1이 지났다. 연초 올해는 꼭 이런 일들을 이루리라 마음먹었던 다짐들이 있으리라. 처음의 계획대로 잘 지켜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작심삼일 탓에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우리에게는 조상들이 선물해준 또 한번의 새해가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기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흰 도화지 위에 꿈과 소망을 담은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간다. 하지만 혹시 그림이 원하는 대로 되지않는다고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림이 잘못 됐다면 위에 다른 색을 칠하거나 아예 구상을 새롭게 다시 할 수도 있다. 인생에 하나의 정답과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수를 했다면 만회할 수 있는 두번째 기회가 늘 우리에게는 있다. 그러니 한번 실패했다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금물이다. 또 한번의 새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두들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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