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경칩(驚蟄)도 지났으니 이젠 완연한 봄인가 보다. 겨우내 옴츠렸던 몸이 한바탕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본다. 그간 휴가 나갔던 근육들이 새로 나는 것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맑아진 머리로 생각 좀 해봐야겠다. 이제 우리의 뜨락에 내려앉은 봄, 겨우내 우릴 그토록 설레게 했던 봄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새봄맞이 집안 대청소라도 서둘러야 할까보다.  

봄은 바람이다. 더욱이 풍다(風多)의 섬인 우리 고장 제주의 계절은 우선 바람으로 온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우린 살갗을 스치는 바람으로 안다.

손등을 지날 때마다 서걱거리던 거친 숨소리는 언제부터인가 싶게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옛 바람이 아닌 때문이리라.

또한 봄은 빛이다. 산내들에 풀어놓은 물감의 빛깔이 어느새 달라져 감을 본다. 노랑과 연둣빛이 그것이다. 고운 빛깔이다. 부끄럼을 띤 새색시 마냥, 봄 처녀는 하얀 구름 너울을 쓰고 진주이슬을 머금은 채 그리 고운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봄은 생명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움직인다. 주소지가 가변(可變)이면 동물, 불변(不變)이면 식물이라 따로 일컬을 따름이다. 이들은 모두가 생장점(growing-point)을 갖고 있다. 이게 다쳐선 안 된다. 생장점이 손상되면 희망이 꺾이고 고통이 따른다. 봄은 마침내 이 생명을 잉태함으로 완성된다. 그러기에 봄은 희망(hope)이자 힘(power)이요  에너지(energy)다. 이들이 곧 생명의 원천(source)인 셈이다.

돌이켜 볼 때 우리 고장 제주의 지난 겨울은 꽤나 힘들었다. 그런 동토(凍土)에 새봄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우리 모두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이 기운을 맘껏 맞아들이자. 활짝 열어젖혀야 할 것은 고작 빌딩의 창문이 아니라, 마음의 창문이다. 창문을 열어도 마음 문이 닫혀 있으면 그것은 도루묵이다. 창문을 열고 봄바람을 쏘여줘야만 할 현안과제는 과연 무엇인가. 사실 이 분야에 연구도 실무도 없는 문외한이지만, 나름대로 그러한 과제를 몇 가지 도출해 보고, 한마디씩의 소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해군기지의 문제이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제대로 감당도 못할 짐을 왜 도지사만 온몸으로 떠안으려 하는가. 어디까지나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라. 이 사업이 도정시책인가 국책사업인가. 아무려면 설마이긴 하겠지만, 우리 눈에 정작 대통령이 방관자로 비침은 단순 착시(錯視)인가 한낱 오해인가.

둘째는 4·3의 문제이다. 정녕 완전한 해결을 소망할진대, 다 열어놓고 정론(正論)과 반론(反論)간 난상토론(爛商討論)을 벌임으로써, 실체적 진실과 도민의 공감을 도출해 낼 의향은 없는가. 혹 그것이 대통령을 맞아들일 결정적 변수가 되진 않을까. 끝없는 대립과 갈등을 보는 도민은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셋째는 중국자본의 토지점유율 증가의 문제이다. 법령과 통계만을 내세워 문제없다고만 하지 말고, 역사적 안목을 갖고 문제를 직시하라. 도민의 깊은 우려를, 전문성도 정보도 없는 일시적 여론몰이라고 폄훼(貶毁)하지 말라.

넷째는 도·의정 간 갈등의 문제이다. 양측 모두 "도민을 위하여"라는 관념적 타성에 천착(穿鑿)하지 말라. 두 기관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진정 오늘날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오로지 '위민(爲民)'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인가. 다시 묻건대 정녕 그러한가.

어쩌다 되레 백성이 지도자들을 걱정해야 하는 모양새가 되어 가는가. 저들은 그저 입만 열면 그토록 백성을 위하노라는 데도 말이다. 도대체가 영일(迎日)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리가 없는 우리네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그리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좀 편안히 살자. 빛 고운 고양이털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는, 그런 봄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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