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전 애월문학회 회장·시인·논설위원

   
 
     
 
나의 똥막사리에 때 아닌 함박눈이 내린다. 이월 들어 한두 잎, 눈을 뜨던 백매 청매가 삼월 들어 풀풀 날리고 있다. 볼에 스치는 바람도 달착지근하다. 꽃샘 한파가 못내 미련을 떨듯이 이봄 나는 또 청승을 떨어볼 참이다.

폐원한 과수원에 15년이나 방치된 낡고 작은 관리사가 나의 '똥막사리'이다. 직장을 은퇴하고 낡은 페인트처럼 속절없이 바래가는 삶이 겨워 40여년이나 팽개쳐두었던 붓을 들어 긁적거리고, 나의 시업 10년에 시로 나를 닦으며 지낸다. 남쪽으로는 소나무 숲이고 북쪽으로는 마을 너머로 먼 바다가 시원하다.

지인들은 '00산방'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줬지만 나는 허름하고 작은 집을 일컫는 '똥막사리'라는 제주어가 좋다.

단순하여 지루한 공간에서 그나마 반려견 막둥이와 닭들 더불어 심심 파적하여오던 터에, 생동하는 이 봄 나는 오히려 닭장을 폐쇄하기로 하였다.

3년 전 닭장을 짓고 병아리 열 마리를 들였는데 그것은 순전히 꿩 먹고 알 먹으려는 심보에서였지만, 고 작고 앙증스런 것들은 이내 나를 사로잡고는 눈을 뗄 수 없게 하였다. 4월임에도 돌돌 떠는 것들을 두 손에 품으면 어미품인 양 스르르 눈을 감고 "비비비비" 옹알이를 하는 거였다. 그렇게 교감하면서 스스럼없이 내 무릎에도, 어깨에도 오르곤 하였다. 인가에서 먼 곳이라 번번이 들개와 고양이가 채갔지만, 그래서 화가 나고 속상하였지만, 그래서 닭들과 막둥이와 나는 그 세월에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있었다. 손때 묻고 길들여진 정으로 그것들은 삼계탕의 닭고기가 아니었다.

때로 똥막사리가 쓸쓸하고, 알 수없는 불안과 풀리지 않는 일들로 안절부절 못할 때 닭장에 쪼그리고 앉아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의 응달에 햇살이 드는 거였다.

그럴 때 새삼 저들에게서 자연의 순수와 진실, 생명에 대한 외경을 깨우치는 거였다.

그런 반면에 저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였다. 해처럼 아침에 문을 열어 모이를 주고, 청소를 하고 해처럼 저녁이면 문을 닫아야 했다. 한마디로 저것들에 코뚜레를 뀌어서 살아야 했다. 친구와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다가도 부랴부랴 달려와야 했는데 무엇보다 힘든 것은 닭을 잡는 일이었다.

모처럼 애들이 육지에서 오거나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쩔 수없이 닭을 잡을 때 나는 속으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수없이 뇌어야 했다. 이제 더는 닭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려 한다.

하여 친구들을 부르고 마지막 남은 장닭과 암탉의 목을 쳐야 했다. 순명하듯이 말똥말똥한 눈을 보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수없이 뇌면서…. 무슨 심사일까, 자꾸 뒤돌아보고 싶은 허전한 마음으로 문득 들여다 본 둥우리에 아, 거기 오늘 아침 낳은 알 하나가 똥그라니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을 듣고 O시인은 "유언 한마디 남겼네요"하였다. 그 말이 막걸리 잔을 돌리면서 내내 회자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닭을 잡는 일이 탓할 짓도, 죄가 될 것도 없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알 하나의 유언처럼 나의 한 편에 남아있을 것이다.

지구가 아직 망하지 않는 것은 번식과 조절의 공생적 섭리, 조화와 균형이 아직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비대칭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다. 이것이 지구의 위기이고 비극일 것이다.

나의 시 '미안하다, 닭이여!'를 소개한다. '밤에도 불을 밝혀 황금알을 재촉하는 세상/ 서릿발 같던 예언은 허언이 되고/ 신이 내린 직분에서 쫓겨난 닭/ 치킨과 닭갈비를 위하여/도마 위에 목을 길게 늘여놓았다.// 미안하다, 닭이여!/ 지금은 세례요한이 죽은 세상// 곰쓸개 내어먹고/ 뱀도, 개도 잡아먹고/ 나는 사람이다./ 너를 통째로 먹어야/ 성이 차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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