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장

현대는 소비자 시대다. 농촌이든, 기업이든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 시장경제 패러다임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빠르게 변화하기에 고객을 감동시키지 않으면 농촌도,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1차산업 종사자와 기업 등 많은 생산자들이 고품질 상품과 착한 가격, 소비자 권익을 강화하는 서비스로 무장하면서 생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소비자 시대는 시장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나 자치단체가 내놓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지자체는  국민·주민을 감동시키기 위해 다양한 복리증진 정책을 만들고 발표한다. 
 
정책의 소비자인 국민·주민의 마음을 사지 못하면 정부·지자체의 존립 이유도 없는 탓이다. 그래서 정부·지자체 정책의 품질이 높으면 국민·주민들이 환영하고, 반대의 경우는 리콜이나 '폐기'까지 요구한다.
 
최근 원희룡 도정이 오는 2019년까지 임기내 추진할 '고품질감귤 안정생산 구조혁신 방침'을 발표하자마자 농민단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반발의 중심은 '비상품 수매가 보전 폐지'다. 
 
원 지사는 지난 14일 정책을 발표하면서 2010년산 노지감귤부터 ㎏당 50원씩 농가에 지원했던 비상품 가공용 수매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임도정에서 전량 수매했던 비상품 수매 범위를 오는 9월부터 새롭게 시행될 5단계(2S~2L) 상품규격 이내의 중결점과로 제한했다.
 
상품 규격내의 비상품은 수매가를 종전처럼 보전하지만 나머지는 농가 스스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원 도정은 이외에도 표준과원 조성 의무화, 감귤상품 규격 5단계 시행, 중앙도매시장과 체결한 강제착색·비상품 유통 근절 협약, 감귤실명제, 초분광 영상 감귤작황 예측 등 소비자 중심의 농가의식 및 생산·유통구조 혁신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감귤정책의 소비자인 농민들은 "농가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방침"이라면서 폐기 또는 전면 재수정을 주장했다. 도가 제시한 농가 자율폐기로 비상품 유통을 막지 못할뿐더러 비정상적인 유통경로로 더 많은 물량이 시장에 반입, 감귤가격을 하락시킬 '부메랑'론을 제시했다. 
 
농가들은 또 "비상품 감소의 적과를 실시해도 평균 30% 이상 발생, 따지 않을 수도 없고 버린다해도 오염과 수확작업 문제로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비상품 수매가 보전 폐지를 놓고 원 도정과 농가가 마찰을 빚고 있지만 '비상품 유통 금지' 총론에 공감하는 만큼 합의점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농가들이 우려하는 비상품 도외반출 전면 차단이 과제다. 
 
수매가 보전 폐지 및 상품 규격 이외의 수매 거부로 판로를 찾지 못한 비상품이 유통인(상인)이나 농·감협 선과장을 통해 시장에 공급되면 상품가격 하락을 부채질할 '풍선효과'가 상존하고 있다. 2007년 가격폭락 당시만 해도 비상품 출하 금지 등 수급 조절을 위한 정부의 유통명령제가 발령됐지만 '열 포졸 한 도둑 못 잡는다'는 말처럼 비상품이 소비지에 유통, 상품 가격을 끌어내렸다. 
 
물론 원 도정이 중앙도매시장과 체결한 비상품감귤 유통근절 협약, 감귤실명제로 비상품 출하 단속이 강화되겠지만 도외반출 전면 차단의 효과를 얻을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상품 유통 상인이나 농·감협의 선과장을 폐업시킬 만큼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비상품·강제착색 유통행위를 적발하고도 과태료를 제대로 징수하지 않는 도정의 솜방망이 처벌을 감안할 때 실효성은 더욱 낮아 보인다.  
 
도의 감귤구조 혁신방침이 생명산업 유지로 발전하려면 농민들의 걱정을 해소하는 정책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미숙 감귤이 소비자에게 퇴짜를 맞는 것 처럼 설 익은 정책도 퇴짜를 맞을 수 밖에 없기에 농가들이 비상품 자율 폐기를 수용할 수 있는 정책 품질 향상이 절실하다. 
 
농가들도 수입산과 국내산과의 틈바구니에 끼인 제주감귤 '샌드위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비자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착한 생산자'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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