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에 이어 양배추와 당근마저 유통처리난을 겪으면서 제주 농촌이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본격 출하시기에 접어든 양배추와 당근 가격은 재배면적 증가와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 부진 등으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자녀 학자금과 영농자금 원금 상환 및 이자 부담에 쫓기면서 갈수록 쌓여가는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다.

위기에 처한 제주농촌의 현실과 향후 전망, 가격 안정대책의 실효성 등을 살펴본다.

◈양배추


제주산 양배추 가격이 출하초기부터 폭락세를 면치못해 농민들이 깊은 시름에 빠지고 있다.

이미 밭떼기 거래가 끊긴데다 뉴라운드 출범과 소비 위축 등 악재마저 겹쳐 아예 양배추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18일 북제주군에 따르면 서울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에서 거래된 양배추 가격은 10kg 망사당 1300원대로 하락했다. 이는 가격이 크게 떨어졌던 지난해 1900원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또한 현재 농산물 도매시장에는 강원도 고랭지와 충남 서산 등에서 생산된 양배추 잔량이 많아 본격 출하시기를 맞은 제주산 양배추의 판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배추 재배농가들은 가급적 조기 출하를 피하고 있으며 일부에선 아예 밭을 갚아엎는 등 수확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일부 농가는 연이은 가격 폭락으로 자녀 학자금을 비롯해 상환기일이 도래한 영농자금의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올해산 양배추 재배면적은 1417ha로 지난해 1332ha에 비해 85ha 늘었다. 태풍과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이 없어 생산예상량은 8만4000여톤으로 지난해보다 3만톤가량 증가했다.

양배추 주산지인 북군지역의 경우 △한림읍 390ha △애월읍 699ha △조천읍 20ha △한경면 117ha 등 1226ha로 예년보다 작황이 좋아 1ha당 생산량이 55-60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도와 북군이 양배추 가격회복을 위해 자율폐기와 비축 및 물류비 지원대책 등을 마련하고 있으나 제대로 통용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군은 자율감축을 희망하는 농가에 ha당 100만원씩 총 2억4000원(240ha)을 지원할 계획이다. 톤당 12만5000원의 수출 물류비와 계통출하 물류비·저장물류비 등도 농가에 지급된다.

그러나 농민들은 자율감축의 경우 전적으로 농가 자율에 맡겨져 강제성이 없는데다 물류비 지원도 농협 수출물량 9500톤 등 일부에 한정돼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근


당근의 사정도 그리 좋지가 않다. 곳곳에서 가격하락과 처리난이 우려되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내 당근의 재배면적은 지난해 2617㏊에 비해 353㏊(14%) 감소한 2264㏊에 이르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올해 당근 면적도 지난해 4383㏊보다 183㏊(4%)줄어든 4200㏊에 이른다.

이처럼 재배면적은 감소했으나 조기 출하된 당근의 경락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남제주군과 성산지역 농민등에 따르면 12월부터 본격적인 수확철을 맞는 당근의 경락가격(20㎏당 1box)은 최근 서울공판장에서 8000원-1만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의 1만1000원∼1만5000원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또한 최근의 경락가격은 지난해 본격적인 수확철에 기록된 가격과 비슷한 실정이다.

전반적인 당근의 가격흐름은 조기 출하 때 높은 가격을 형성, 본격적인 출하철을 맞으면서 서서히 하락한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올해산 당근의 가격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농민들과 유통업체 등은 최근의 가격부진을 육지에서 생산된 당근의 처리난과 경기침체 등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국적인 당근 처리는 강원도 고랭지산이 10월20일쯤에, 경기도 등지에서 생산된 ‘지모노’가 11월20일쯤에 각각 처리가 끝난 후 제주산이 12월부터 2월까지 이뤄진다.

그러나 올해는 좋은 기상여건 등으로 당근 작황이 양호,고랭지산의 처리가 당초 시기보다 15∼20일간 연장된데다 ‘지모노’의 품질이 예상외로(?) 좋아 제주산 당근이 고전하고 있다.

농민들은 여기에다 전례없는 ‘밭떼기’거래의 저조로 벌써부터 처리난을 걱정하고 있다. 김모씨(46·성산읍)는 “보통 10·11월쯤엔 상인들의 밭떼기 거래가 한창일 시기이지만 요즘은 상인들을 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며 “이러다가 12월이후 홍수출하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다.

이에대해 남군 관계자는 “상인들이 올해산 당근의 가격하락을 예상, 밭떼기 거래를 기피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당근의 재배면적은 줄었으나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늘어난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이태경·이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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