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영국왕립건축사·논설위원

7~8년 전 제주국제포럼에서 주관한 일본 답사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슈는 제주의 미래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배경엔 특별자치도로 격상되면서 부여 받은 독립적인 지위에도 불구하고 지역이 직면하고 있던 문제들이 있었다. 
 
소위 먹거리가 될만한 산업의 부재와 그에 따른 인구감소라는 이중고다. 자연 자원을 활용하고 기존의 건축을 재생해 활력을 되찾은 마을들을 돌아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함이었다. 밤새 고민하고 토론하며 제주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모습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그 당시 고민했던 지역의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이 한 달에 1만명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인구가 늘고 있고, 관광도 올레길 열풍과 중국인들에 힘입어 되살아났다. 
 
다음이 회사 본사를 이전한다고 할 때만 해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신기할 만한 일도 아니게 됐다. 구도심에 버려진 건물들을 미술관으로 바꿔 세계적 수준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아라리오 뮤지엄이나 넥슨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박물관, 저지리의 김창열 미술관처럼 훌륭한 문화 공간들이 속속 계획되는 것도 흐뭇한 소식들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처럼 필자가 염려하는 것도 변화 자체라기 보다는 그것의 속도이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다 보니 대두되는 문제일 것이다. 특히 유입되는 자본의 성격이 상식을 벗어난 규모와 형식이어서 더욱 그렇다.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지역 재생의 성공 사례 중에서 관광, 인구, 자본의 유입을 언급하지 않은 예는 어디에도 없다.
 
문화와 재생을 얘기하지만 결국은 자본의 유입을 통한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변화와 발전과 그것의 균형·속도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검증하고 따져봐야 한다.
 
결국은 정치와 경제 논리에 따른 것이지만 그것에 맞설 우리만의 철학이 있는지, 변화의 속도가 우리가 감당할만한 정도인지, 투자의 균형추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에 어느 정도 견딜만큼 체력을 비축하고 있는지도 관건이다. 이들은 결국 제주의 변화와 발전이 과연 지속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제주의 미래는 지금부터의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요즘 같은 육지의 관심은 다시 오지 못할 기회인 지도 모른다. 
 
이 중에서 상생하고 지속 가능한 것들을 추려 꾸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키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자연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투자와 개발이 가능한 모델을 찾는 일이다. 
 
또한 지역의 아름다운 마을을 지키면서도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연을 존중하고 기존 환경을 재생하는 공감대는 미래를 위해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기 위해서 상업 논리와 결합하되 무분별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지역의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다.
 
한편 마냥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도 않다. 몇 십 배가 뛰는 땅값의 유혹에 휘말릴 수 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그로 인해 망가질 환경에 대해서는 철저히 고민을 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 제주를 지켜줄 것은 다름아닌 우리만의 관점이자 논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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