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 이사대우·정치부

제주는 '도둑' '거지' '대문'이 없는 삼무의 섬이다. 삼무정신은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태도를 1000년 이상 유지하는 원천으로 작용했다. 특히 도둑이 없음은 남의 것을 탐하기보다 이웃간에 음식을 주고 받으면서 공동체를 유지시켰다.

이처럼 삼무정신을 기반으로 평화공동체를 유지했던 제주지역에 절도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도둑이 많은 섬으로 오명을 쓰고 있다. 대검찰청의 2014년 전국 범죄분석 결과 인구 10만명당 절도 발생비율은 제주가 982.5건으로 가장 많았다.

남의 것을 훔친 절도는 범죄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법부의 분류에 포함되진 않지만 관련 법규를 어기면서 공공비용을 훔치거나 낭비·비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공직사회의 보조금 비리도 삼무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감사위원회가 적발한 77개 영농조합·농업회사법인의 보조금 비리 의혹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3년부터 지난 4월까지 수입개방 확대에 대응, 경쟁력을 키우겠다면서 보조금을 받은 241곳 중 77곳(32%)이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5곳은 탈세혐의, 인장 도용 및 액비살포 허위 작성 의혹, 지게차 구입대금 사기 혐의, 식품가공공장 연구용역비 배임 혐의 등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업체들의 위법 혐의는 공직자들이 반드시 지녀야할 공정한 직무수행을 스스로 포기한데서 비롯됐다. 서귀포시 공무원은 보조금 부정수급 혐의로 수사를 받는 지급 제한 업체임을 알면서도 지원하고, 제주시 공무원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제주시·서귀포시를 감독할 제주도 역시 12곳 법인에 보조사업을 신청토록 연락한후 8곳은 신청서 없이, 4곳은 심사 없이 사업자로 선정해 보조금을 지원했다.

이번 영농조합·농업법인회사의 보조금 비리 의혹을 접하면서 공직사회에 대한 도민들의 불신도 더욱 커지고 있다. 지방정권이 바뀌어도, 공직사회가 청렴을 결의해도 보조금 비리가 반복되면서 신뢰도가 추락하는 탓이다. 게다가 보조금을 가로채는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면서 사후대책으로 발표했던 공직사회의 청렴 및 근절책 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도민사회에 팽배하다. 심지어 보조금 비리에 연루된 제주도·행정시 모두가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해 어떠한 방지책도 발표하지 않는 등 반성의 모습도 없어 실망스러울 뿐이다.

'보조금=눈먼 돈'으로 치부할 만큼 비리의 유혹이 만연한 풍토를 말끔히 도려내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집행을 담당한 공직사회의 공정한 직무수행이 바로서야 한다. 공직자가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국민·도민이 낸 세금을 마음대로 낭비하고 사용하면 비리가 계속되고, 그 피해는 국민·도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농업법인처럼 비리의 대다수가 사업수급 요건과 자격을 거짓으로 꾸미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사후관리·처벌 강화 못지 않게 사업자 선정단계부터 원천적으로 비리가 싹틀 여지를 없애는 사전 예방시스템 구축도 중요하다.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과 부정수급자 근절 등 사전예방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지사의 보조금 비리 척결 의지가 충만해야 한다.

도지사는 제주발전을 이끄는 리더 중에서 마음만 먹으면 멋있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다. 비리를 저지른 공직자나 부서를 일벌백계하고, 부정수급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업자나 단체 등에 대해선 과감하게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청렴한 목민관으로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은 공직자들의 무분별한 재정낭비를 경계하기 위해 '검약무화'(儉約無華)를 지키도록 당부했다. 내 집안의 살림을 꾸려나가듯이 재정을 아끼고 검소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정이 추진중인 제주미래비전과 제주지역내총생산 25조 달성의 경제활성화 정책도 보조금 등 공직사회의 비리 유혹을 먼저 근절시켜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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