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장·논설위원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대구의 중학교로 '유학'을 간 그의 1학년말 성적은 68명 중 68등. 꼴찌였다.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열었다.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던 형편에서 말이다. 아버지를 말리지 못한 그는 마음 깊이 다짐을 한다. '이제는 내가 달라져야 한다. 정말 1등을 해야 한다!' 그 이후 그는 달라졌다.

머리를 싸매고 노력한 끝에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됐다. 어느 날, 부모님 앞에 꿇어앉았다. "어무이…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 말을 시작하려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알고 있었다"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의 이야기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 속아 넘어가 준 아버지의 '기대'가 아들을 분발시킨 것이다.

미국 해군에 대장계급장을 가진 햇병아리 소위가 있었다. 함대 행사에 참석했던 해군대장이 그를 불렀다. "소위인 자네가 어떻게 대장계급장을 갖고 있는가?" "예! 제가 소위로 임관할 때 애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애인을 두었군. 열심히 노력해서 꼭 대장이 되게" 그 뒤 그 소위는 꾸준한 노력으로 많은 공을 세웠고, 마침내 대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바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해군을 격파한 태평양함대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대장이었다. 신참 소위에게 준 애인의 선물이 그를 대장으로까지 끌어올렸고 마침내 일본군 함대를 격파하는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6·25전쟁으로 먼저 피란가신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의 손을 잡고 남쪽으로 내려가던 6학년짜리 소년. 길에서 굶어죽을 것 같아 다시 서울로 되돌아가는 길에, 신주처럼 아끼던 재봉틀을 팔아 쌀을 바꾼 어머니가 어린 소년에게 쌀자루를 지우고 걷게 했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뒤따라오던 어머니가 뒤처지면서 젊은 청년이 나타나 쌀자루를 져주겠다며 짊어지고는 두 갈래 길에서 소년의 외침도 못 들은 체 그냥 가버린다. 쌀을 잃고 울고 있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내 아들이 똑똑하고 영리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하시며 끌어안고 우셨다. 그 뒤로 '똑똑하고 영리한 아들'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했노라는 이 소년은 바로 박목월 시인의 아들이자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박동규 시인이다. 목숨과도 같은 쌀자루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아들을 본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으랴만, 그래도 아들을 끌어안고 '똑똑하고 영리한 내 아들'이라고 함께 울어준 어머니가 아들을 분발시킨 것이다.

여덟 살에 부모를 따라 시카고로 이민을 간 여자 아이.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모르는 상태. 학교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첫 학기 성적은 당연히 F, F, F…였다. 말이 필요 없는 미술(A+)을 빼놓고는. 그랬던 이 아이가 인생역전을 경험하게 된다. 4학년때 만난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그림을 보여주고 영한사전을 찾아가며 아이와 대화를 시도한다. 그 날도 30~40분 동안 낱말 10문제를 풀었을 때에 낱말퀴즈 책에다 커다랗게 '100'과 'Wonderful'이라고 써주고는 환한 미소를 보여준 것.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에 아이는 달라졌다. 여섯 달 만에 영어를 익히고 활발하게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정신건강 상담사가 된 조세핀 김(한국명 김명화)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을 분발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여름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는 계절.  우리 아이들도 가끔은 피곤해지고 게으를 수 있을 것이다. 유혹에 빠질 수도 있고 노력은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박찬석 소년의 아버지, 니미츠 소위의 애인, 박동규 소년의 어머니, 조세핀 김의 선생님이 돼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한경쟁 속에 내팽겨진 우리 아이들에게 '스스로 일어서서 분발하게 하는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부디 많은 사람이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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