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주 제주에코푸드 대표·논설위원

알레스 슈타인휘구렌! 얼마 전 독일인이 제주관광을 마치고 한 말이다. '모든 게 석인상이네'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만져보며 제주의 추억을 담는 것도 역시 돌하르방 앞이다. 제주공항에서 부터 관광지 토산품가게까지 마주치는 게 돌하르방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부동의 1위는 돌하르방인 셈이다.

성문 앞에 세워졌던 하루방은 모두 48기이다. 이 가운데 제주에는 45기가 남아 있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백하르방, 벅수머리, 돌하르방, 돌영감 등 지역에 따라 달리 불렸다. 1971년 도문화재위원들이 '돌하르방'으로 명칭을 통일했다. 그 결과 도내 곳곳에 다른 모습으로 산재해 있는 석인상들은 공식명칭에서 제외됐다.

대정읍 인성리·무릉리 등등 곳곳에 세워진 방사용 돌탑 위에도 석인상이 자리하고 있다. 모슬포 우체국 앞에 '하르방'이 있고, 옛 대정현 지역의 무덤의 의례공간에도 벙거지 쓴 돌하르방들은 여럿이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관급공사로 세운 성문 석상은 진정한 돌하르방이고, 먼 옛날 자연마을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세운 그것은 돌하르방이 아닐까. 이들 역시 돌하르방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그 원조를 따지자면 오히려 지금 '돌하르방의 하르방'의 격은 바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세계지도를 펴면 유라시아 대륙이 한 눈에 들어온다. 중앙아시아 터어키에서 카자흐스탄·몽골·동북아 만주에 이르는 지역은 석인상 문화권이다. 돌궐시대 석인상이 무려 4~500개나 분포한다. 돌궐석인상 분포도를 따라가면 북방초원길이 그려질 정도이니 '돌하르방길'이라 해도 좋을 성 싶다. 북방 초원에서 강자로 굴림하던 유목민들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유목민들은 선사시대부터 초원에 석인상을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습속이 있다.

몽골 초원에 가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유적 중의 하나가 석인상이다. 특히 동몽골의 석인상은 제주 돌하르방과 친연성이 있다하여 돌하르방의 시원을 몽골로 보고 '북방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자세히 보면 동몽골의 훈촐로와 제주성 앞에 세워진 돌하르방과는 형상과 기능면에서 많이 다르다. 물론 돌하르방은 북방적 요소가 다분히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최근 중국 동북지방 박물관에서 돌하르방과 흡사한 요나라시대 석인상을 발견하고 학계에 보고된 바가 있다. 요대 석인상의 외형이 몽골시대로 이어졌고, 그 것이 몽골 지배기에 제주까지 전해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3세기 쿠빌라이 칸의 원제국 때 제주에 온 순수 몽골인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 몽골과 동북지방의 초원접경지대 반농반목문화권에서 온 몽골제국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또한 14세기 후반 명나라 초기 제주로 온 몽골황족들은 중국의 한족문명권에서 생활하던 이주자들이다. 현재 몽골지역에 해당하는 순수 유목문명권과는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원제국 시절 그리고 명나라 초 제주로 온 이주민의 수는 상당하다. 제주의 문화는 토착민들이 그들과 다문화가정을 이루면서 공동으로 창조해온 유산임을 부인할 수 없다. 쿠빌라이 칸 집권 시 북으로 러시아 바이칼에서 남으로는 중국 윈난성 그리고 서쪽으로는 감숙에서 동으로는 탐라에 국립목장이 각각 개설되었다. 칸은 고려의 제주를 분봉시켜 탐라로 명칭을 재 환원시키고 몽골의 14개 국립목장의 하나로 신설한 것이다. 그리고 이곳을 동도(동아이막)과 서도(서아이막)로 구역을 재편성하였다. 세계의 문화가 동서로 활발하게 교류되던 그 시기에 북방 석인상의 문화가 제주로의 진입되고 지역문화와 융합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제주 돌하루방의 원조는 어느 지역에서 무엇으로 찾아야 할까. 원제국시 서아이막에 속했던 고산에서 강정까지 이르는 지역에 무덤과 돌무지 신앙에 퍼져있는 벙거진 쓴 석인상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곳은 역사적으로 북방 이주민 후예들이 최영 장군의 토벌대에 맞선 항전지이며, 몽골황족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유적지다. 또한 대정현성의 돌하르방에 나타나는 색다른 북방식 복식문화도 관심 대상이다. 바로 제주 돌하르방의 문화 융합설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세계사 속에서 제주의 역사적 위상을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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