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4·3 장한어머니상을 시상한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으며 4·3의 생지옥을 건너온 제주의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억울하게 부모 형제 온가족이 희생당하고 씨가 말라버린 가문, 홀로 살아남아 가정을 꾸린 어미니. 중산간 초토화 속에 총 맞아 죽은 아들, 그 자식을 자산의 손으로 흙을 덮었다는 어머니, 임산부의 몸으로 갖은 수모까지 당하고도 유복자를 낳았다는 어머니, 육지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됐다는 오빠가 쓴 편지에 "몸이 아파 죽을 것 같다. 어머니만 보면 살아질 것 같다"라고 적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는 저 도련동의 예순 한살 누이….

 자신과 가족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이 땅의 어머니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제주 4·3의 불기둥을 지나야했던 어머니들의 가슴팍을 열어 보이라면 어느 누군들 성한 곳이 있을까. 어디 새까맣게 숯이 되지 않은 이 있으랴.

 그들은 슬픔을 넘어선 어머니들이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안고 견뎌낸 이 땅의 어머니들, 집채만한 파도와 싸우며 험한 꼴 다 보면서도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그 중의 많은 이들이 자식과 남편을, 부모를 가슴에 묻고 한 서리게 이승을 떠났다. 또 그 어미의 딸들이 쇠비름처럼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으켜 세우며 살고 있다.

 그동안 감금된 역사는 그 비극사 속의 여성들을 재조명하고 일으켜 주지 못했다. 상처를 씻어주지 못했다.

 그 상처를 씻어주는 길은 무엇보다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그들은 그로 인해 이념에 희생당했다. 그 지아비가 산사람이었다느니, 그 오라비가 군·경이었다느니 하는 것들 말이다. 그 미묘하고 복잡한 전개과정에서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영문도 모른 채 왜 억울하게 죽어야 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괴로웠던 것은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가슴 밑바닥에 묻어 입을 열지 못했다는 것이다.

 4·3의 불길 속에 살아남은 여성들 가운데는 아직도 희생자 신고까지 할 필요없다며 꺼리는 이도 있다. 2년 전, 4·3특별법이 제정된 순간 참았던 눈물을 흘리던 유족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4·3 장한어머니상을 준다? 뜬금없는 소리 아닌가. 이 상의 신설 그 자체를 폄하할 뜻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상도 그것의 제정의미와 부합될 때 빛난다.

 상의 취지는 4·3으로 인한 희생자의 유족 중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자립자활해온 어머니를 발굴한다는 것이고, 대상은 당시 남편을 잃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주민으로부터 귀감이 되는 자, 4·3이후 소녀가장 역할을 해 오며 모범가정을 꾸려나가는 자, 4·3 후유장애자의 배우자로서 남편을 간병해 온 이가 속한다 한다.

 또 지역별로 인원을 배정해 시·군에서 추천한 후 제주도 공적심시위원회가 모두 30명을 선정, 12월중에 상을 준다는 것이다.

 도의 선심성 지원문제가 불거지는 이 계절에 일방적 선심행정의 발상이 아닌가하는 물음을 지울 수 없다.

 씁쓰레하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과연 상의 순수성을 살리기 위한 사려 깊은 논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까.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장한 어머니를 선정하겠다는 말인가. 어느 지역 몇 명하는 식으로 가려서 추천할 수 있는 일인가. 상대적으로 어떤 후유증을 남길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지금 시점이 급하게 이 상을 만들어야 할 때인가. 4·3 진상규명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희생자 심사기준 등의 문제가 있고, 4·3평화공원문제는 정쟁에 밀려 차일피일 지금껏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순으로 보면 우선적으로 이 현안부터 풀어나가야 할 일 아닌가.

 그리고 4·3의 험한 세월 속에 당당히 삶을 지켜냈던 이 섬땅의 어머니들은 모두 장한 어머니들이다.<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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