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가을, 제주를 걷다

혹시 '과속'하고 있었나? 계절에 물어 보았다
멈춰보니 저만치 앞서나간 야속한 세월
아날로그 감성에 맞춰 천천히 호흡을 맞춘다
 
안단테(Andante).
이 계절에 허락된 속도다. 누가 일부러 매단 것은 아니지만 '각자 기분에 맞게'라는 꼬리표도 달려있다. 아다지오와 알레그레토의 중간 빠르기, 안단테가 빠른 속도인지, 아니면 느린 속도인지에 대한 의견은 해석에 따라 갈린다.
 
'각색된 느림'에서 벗어나

모데라토보다 조금 느린 템포는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한다. 봄에 들었다면 통통 튀는 느낌의 음정이, 가을 심장 고동에 맞춰 나지막이 등을 구부리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찌 보면 계절이 묻는 것만 같다. 줄기차게 앞을 향해 달리는 지금 혹시나 '과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여름 내 신발장을 지켰던 운동화를 꺼낸다. 뽀얀 더께는 툭툭 손짓 몇 번에 자취를 감춘다. 작아진 듯 느껴지는 건 한 계절 샌들이며 슬리퍼 따위에 길들여진 때문이다. 걸어보겠다며 자동차 키를 먼저 찾는다면 당신은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옷장을 뒤져가며 채비를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기능성 옷과 장비를 챙기고 성취감이 즐거워졌다면 이미 '각색된 느림'에 감염된 상태인지도 모른다.
 
삶의 상징에서 장식으로
 
생각해보면 사람이 사는 곳에는 길이 있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연에 순응할 줄 알았던 옛 사람들은 꼭 필요한 만큼만 길을 냈다. 생존을 위해 자연에 허락을 구하고 반복적인 발걸음으로 흔적을 만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탯줄 같던 느낌은 홀연히 사라지고 지금은 '힘'을 상징하고 있다. 둘이 길에 서면 누군가 한 사람은 몸을 돌려 여유 공간을 만들어야 할 만큼 좁았다던 길은 행여 빈틈이라도 보일까 양면 주차에 아슬아슬 몸집 큰 차들이 교차하며 사람이 피할 지경이 됐다.
 
물지게를 매는 대신 허벅을 등에 졌고, 집에 큰 일이라도 치를 때면 길을 따라 마을 전체에 반을 돌렸던 사정은 낯선 인기척에 무작정 경계하고 사생활이란 벽을 쌓고 거리감을 두는 것들로 교체됐다. 어느 순간 스토리며 의미들로 길에 '이름'을 붙이더니 무슨 미인대회라도 하듯 시도 때도 없이 잘난 체를 해댄다.
 
제주 정체성의 '응축'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뿐. 그것이 무엇이건 사실 그 안에 응축된 모든 것이 '제주'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이 내고, 걷고, 또 밀어낸 '길'이다. 인간의 삶이 욕구에서 욕망으로 증폭되면서 오솔길은 신작로로 바뀌었고, 신작로는 고속화도로로 진화했다. 길의 의미도 생존을 위한 활로에서 소통의 공간을 거쳐 '보다 빨리'의 속도 경쟁 속 희생양으로 변질됐다. 돌고 도는 것이 어디 사람들의 인생사에만 통하는 말일까. 디지털 피로감에 지친 사람들이 아날로그 감성에 취해 하나 둘 각자의 호흡에 맞춘 '느림'을 찾는다. 꼭 이 계절의 느낌이다. 고은 시인도 노래하지 않았는가.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그 꽃'전문).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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