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부침이 심한 정치권을 보다보면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렸다는 ‘세한도(歲寒圖)’가 생각난다.

세한도는 긴 화면에 빈한해 보이는 집 한 채가 덜렁 있고 그 좌우로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려져 있다. 나머지는 극도의 절제미가 농축된 여백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두고 선비의 정신이라 하기도 한다. 세한은 추운 겨울을 뜻한다.

그러나 조선조 최고의 문인화로 꼽히는 세한도의 압권은 옆에 적힌 추사의 제발문(題跋文)에 있다. 거년이만학대운(去年以晩學大雲)으로 시작되는 스무 행의 편지글.

제발문은 귀양온 자신에게 귀한 책을 구해서 보내준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제발문이 없는 세한도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지난해에는 만학과 대운이라는 두 책을 부쳐오더니 올해는 우경과 문편 두 책을 보내왔는데 이같은 일은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네. 더구나 세상 인심은 오직 권세와 이익을 따르고 있는데도 어렵게 구한 책을 권력자에게 주지 않고, 바다 밖 섬에 갇혀있는 초췌하고 쇠약한 사람에게 보내 주었으니 이는 세상사람들이 흔히 권력자를 따르는 것과 달라서 하는 말이네. 자네 역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일진대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또 나를 권력으로 대하지 않아서 하는 소리네. 세한 전이라고 해서 더 할 것도 없고 세한 후라고 해서 덜 할 것도 없으니 세한 이전의 자네를 칭찬 못할 것이 없네”

세한도는 먹으로 그린 담백한 화풍과 함께 추사의 높은 독서력을 헤아리게 하면서 권력에 따라 부나비처럼 옮겨다니고 있는 당시의 세상인심을 엿보게 한다.

총선을 앞둔 최근의 정국도 그와 진배없다. 아무리 정치를 가리켜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시정잡배보다 못한 갖은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있는 게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그러면서도 합종연횡에 능한 아메바와 같은 정치가가 대중으로부터 대접받는 세상이다. 어쩌면 그것은 희대의 소설 삼국지(三國志)가 한문영향권에 잘못 심어놓은 또다른 병폐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지조가 새 털처럼 가벼운 요즘에 세한도의 제발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종배. 논설위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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