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 차장

은퇴남편증후군(RHS·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은퇴한 남편을 돌보느라 아내의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지면서 몸이 자주 아프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증상을 말한다. 1992년 일본에서 정신질환의 한 유형으로 발표되면서 처음 이름 붙여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삼식이(집에서 세 끼를 먹는 남편), 바둑이(아내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남편), 젖은 낙엽(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모든 것을 아내에게 의지하고 귀찮게 하는 남편) 같은 용어도 등장했다.

은퇴남편증후군 같은 증상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증상이 심해지면 부부갈등으로 이어지고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결혼 20년차 이상 부부의 황혼 이혼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일 법원행정처가 펴낸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황혼 이혼한 부부가 3만3140쌍으로 전체 이혼 부부의 28.7%를 차지했다. 황혼 이혼 비율은 2010년 23.8%에서 매년 높아져 2012년 26.4%로 5년차 미만 신혼 이혼을 앞질렀고 계속 격차를 벌리고 있다. 황혼 이혼은 남편의 외도나 가정 불화 등으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유형이 아직까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60대 이상 남성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60대 이상 남성의 이혼 상담 건수는 2004년 45건에서 지난해 373건으로 10년새 8.3배가 됐다. 같은 기간 60대 이상 여성의 상담 건수가 3.7배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어쨌든 남녀 모두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평균수명도 연장되면서 "뒤늦게라도 내 인생 찾겠다"는 의식이 확산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바야흐로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아닌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 돈과 건강은 필수다. 무엇보다 쓸쓸하고 고독한 노년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혼 이혼은 노년의 재앙이 아닐까. 100세 시대, 준비하고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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