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 차장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말이 있다. 이는 16세기 영국의 금융업자이면서 여왕의 고문이었던 그레샴의 이름을 따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라고 한다. 소재의 가치가 다른 화폐가 동일한 명목가치를 가진 화폐로 통용되면 소재가치가 높은 화폐는 유통시장에서 사라지고 소재가치가 낮은 화폐만 유통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현재 이 법칙은 선택 오류나 정보 부족으로 나쁜 것들이 좋은 것들을 압도하는 사회 병리 현상을 설명할 때 많이 사용된다.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내려받은 파일이 진품 파일을 몰아내는 현상 등이 좋은 예다.

최근 검사에 대한 적격심사를 놓고 잡음이 일고 있다. 적격심사는 법무부가 부패검사나 근무 태만 검사를 퇴출시킨다는 취지로 지난 2004년 도입한 제도인데 검찰총장을 제외한 검사들은 7년마다 받게 돼 있다. 적격심사위원회가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인정하면 법무부 장관에게 퇴직을 건의하고 장관이 대통령에게 퇴직명령을 제청할 수 있다. 문제는 불과 몇 년전 법무부에서 우수검사로 능력을 인정받던 검사가 심층적격심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이다. 임은정 의정부지검 검사는 지난 2012년 고 윤중길 진보당 간사의 재심에서 상부의 '백지구형' 지시를 거부했다가 공판 검사가 교체되자 법정 문을 걸어 잠근 채 무죄를 구형했다. 백지구형은 검찰이 사실관계를 명확히 따질 수 없으니 '법과 원칙에 따라 법원이 적절히 조치해 달라'는 적의(適宜)조치의 의견을 내는 것을 말한다. 임 검사는 이후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정직 4개월 처분을 받고 행정소송을 냈고 1·2심에서 승소했다. 현재 법무부의 상고로 대법원 심리가 진행중인 상태다.

임 검사는 2011년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한 박형규 목사의 재심사건에서도 무죄를 구형하는 등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국민 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대한 법무부의 심층적격심사는 검찰의 관행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탄압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이번 사건은 단지 특정 검사의 처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좋은 제도가 잘못 사용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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