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스토리> 귀농인 윤민상씨

무연고 외곽마을 정착
성실함에 주민도 격려
제주살이 착착 채워져

귀농 5년차 윤민상씨(36·제주시 한립읍 상명리)는 매일 '마을'이란 무대에 선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유기농 감귤농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흙을 만진 시간 만큼 마을 일을 본 시간이 살갑고 소중한 때문이다. 그래서 도전에 가까웠던 농사일이 맞춤옷처럼 몸에 맞았는지도 모른다. 마치 '이가 빠진 컵'과 같다.

이가 빠진 순간 '컵'의 기능을 잃었을지 몰라도 꽃병이나 연필꽂이 같은 쓰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처음부터 컵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쓰일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때 환경운동을 했던 윤씨는 '서른 즈음'에 제주행을 택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촌부터 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윤씨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한창 나이에 연고 하나 없는 외곽 마을을 찾아온 '낯선 젊은이'를 반기는 기색은 없었다. '그냥 들렀다 떠날' 인연이라 하기에는 아내와 세 살 아이의 동행이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유기농'에 대한 공부를 하고 밤낮없이 성실하게 일했지만 처음 3년은 말 그대로 힘들었다.

땅을 구하고 농사를 짓기는 했지만 막상 팔 곳을 찾지 못하니 무용지물이었다. 생활비 부담까지 보태지며 생계형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마을문고와 정미소, 콩나물 가공공장 등에서 품을 팔았던 것은 마을에 가깝게 다가가는 기회가 됐다. 윤씨는 "'농사꾼'으로 타고 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농사를 할 운명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눈도장을 받게 되고, 이웃들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제주 살이'가 착착 채워졌다.

외국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주고 농장 일을 도움 받는 우프(willing workers on organic farms)에 가입, 말레이시아와 프랑스인 친구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쳐다보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는 변화도 생겼다.

'가족'이 보다 풍부해진 것도 제주 땅, 그리고 마을의 힘이다. 윤씨는 제주에서 두 아이를 얻어 세아이 아빠가 됐다. "만약 제주에 살지 않았다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아이들을 이만큼 행복하게 만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고 귀띔한 윤씨는 "제주 만큼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곳도 없다"고 말했다.

감귤을 주로 하지만 콩과 보리 등 어르신들에게 귀동냥도 하고, 정책 변화에 맞춰 먼저 걸음도 한다. 여기까지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자연안에서 원없이 뛰도는 아이들의 '추억'은 수천금 돈으로는 살 수 없다. 윤씨는 "'2030 명퇴'뉴스를 보며 내 결정이 정말 잘 한 일이란 생각을 다시 했다"며 "지금의 이 행복감이 앞으로 내 아이들이, 제주가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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