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봄꽃같이 살지 못해 미안해요”

지난 2일 늦은오후 제주한라대 한라아트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여민회의 여성극 ‘새에게는 날개가 있었다’. 막이 내리기 직전, 평범한 아줌마 차림의 김형숙씨.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향해 나즈막히 시를 읊조리며 그동안의 모진 삶을 고백한다.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서 멸시를 받은 며느리의 한맺힌 아픔은 김씨의 처절한 외침으로 절절하다.

줄거리 배경은 현대이지만 막이 오르면서 보이는 것은 전통이다. 남성숭배의 신목(神木) 성황당 아래 구슬픈 아쟁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하얀소복의 며느리와 조상과의 갈등은 여성의 아픔이 비단 지금의 것만은 아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세딸에 다시 딸을 가진 며느리와 ‘아기를 지우라’는 시어머니,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밖에서 아들을 데리고 오는 남편. 드라마속에서 나옴직한 갈등구조는 그러나 제주도 사투리와 여성 연기자들의 자연스런 몸짓으로 다시 되새김질 된다.

뱃속 아기의 춤사위에서 한국판 사부종사에 대한 한의 정서는 절정을 이룬다. 조상이 부채를 들고 이리저리 며느리의 뱃속을 노리는동안 ‘뱃속의 아기’(윤홍경숙 분)는 새가 되어 훨훨 떠날 채비를 한다. 바람에 흐느끼는 듯한 바람소리와 이윽고 몰아닥치는 조상의 검은 그림자, 며느리의 소복을 들추어 아기를 꺼내 탯줄을 끊어버리는 조상의 칼날같은 모습은 이미 아기 새가 떠났음을 의미한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대사와 시, 춤과 퍼포먼스 등 다양한 극적 전달방식과 소재를 통해 볼거리와 심도있는 메시지를 동시에 소화하도록 했다. 이는 또 여성극이 갖기 쉬운 구조적 평면성을 극복시키면서 갈등구조를 더욱 입체적으로 변모시켰다.

비전문 연극인들인 만큼 작품성보다는 연극이라는 장치를 통해 ‘호주제 폐지’ ‘가부장적 제도의 모순’을 고발하고자 한 여성주의적 연극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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