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국장

말그대로 제주가 멈췄다. 지난 며칠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로 도로가 마비된 것은 물론 하늘길, 바닷길이 모두 막히면서 제주는 '고립무원의 섬'이 됐다. 교통사고와 정전, 수도계량기 동파 등이 잇따라 도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농가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양식장 어류가 폐사하는 등의 피해도 발생했다. 특히 제주공항은 45시간 동안 1200여편에 이르는 항공기 운항이 전면 취소되면서 관광객 등 10만여명의 발이 묶이는 사상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났다.

올 겨울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이번 역시 춥지 않은 겨울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평년을 웃도는 기온에 '이상기온'과 '지구온난화' 얘기가 나오고, 겨울상품이 팔리지 않아 울상이라는 업계의 한숨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던 차에 이번 한파의 습격으로 겨울에게 호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 됐다. 이번 추위는 북극 지방의 찬 공기가 제트기류를 뚫고 남하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제트기류는 1만m 상공에서 극지방을 에워싸고 북극의 찬공기가 남하하는 것을 막는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 상층부의 온도를 높여 제트기류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이로 인해 북극 주변에 갇혀있던 찬 공기가 제트기류를 뚫고 남쪽으로 빠져나오면서 강력한 한파를 몰고왔다는 것이다.

이번 북극한파로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지구촌 곳곳이 고통받았다. 미국은 중·동부 12개 주에 비상령이 내려지고, 워싱턴DC 등에는 90㎝가 넘는 눈이 쌓였다. 13개주 20만여 가구의 전기가 끊어지고, 도로와 하늘, 바닷길이 막혔다. 이번 눈폭탄으로 미국 인구의 4분의1인 8500만명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눈(snow)과 종말(armageddon)을 합성한 '스노마겟돈'(snow-mageddon)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중국도 얼어붙었다. 내몽고 일부 지역이 영하 49도까지 내려가고 상하이도 35년만의 한파를 기록했다. 대만에서는 6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인들은 폭설과 한파, 강풍까지 동반한 이번 추위에 '패왕(覇王)한파'라는 이름을 붙였다. 언론들은 "중국 전역이 냉동고로 변했다" "강추위에 태양은 냉장고 속 전등에 불과하다"며 이번 한파의 위력을 보도했다. 일본에서도 비교적 따뜻하다는 규슈와 시코쿠까지 눈에 덮이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온난화가 오히려 전 세계에 살인적인 한파를 몰고온 셈이다.

이상기후 등에 따른 자연재난은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재난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사전에 대응방안이 잘 구축된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폭설과 한파에 대한 제주도의 대응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초기 제설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은데다 기상청에서 이미 주말 한파가 예고된 상황이었지만 공무원들의 비상근무 인력 증원도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제주도가 만든 자연재난 매뉴얼도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항공기 운항 통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노숙하는 비상사태가 이틀이나 계속됐지만 공항공사와의 업무협조 등을 이유로 대응이 늦어지면서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여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공동 대응할 것을 의결했다. 총회에는 원희룡 지사도 참석해 제주가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추진해온 '카본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 정책을 소개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국제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는 계속되고 있고 그에 따라 기상이변과 자연재난 역시 속출할 것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상시화하고 있는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 대응책 마련에도 소홀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자연재난은 어쩔 수 없는 천재(天災)이지만, 이에 대한 대비가 부족해 발생하는 피해는 인재(人災)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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