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 서귀포지사장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년)에 한라산은 이렇게 묘사됐다. '구름 사이로 올라가 우뚝 솟은 정상의 봉우리…그 한라산은 마치 천국으로 가는 장엄한 길처럼 보였다…이 곳 순박한 백성들은 이 웅대한 산에 특별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점엔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시 주민들의 발언도 적혀있다. "한라산은 위대한 정령의 집이오…한라산은 세계의 시작이며 거기서 사람이 처음 탄생했다"는 전설과 신화같은 이야기이다.

한라산은 한민족에게는 영산으로, 도민들에게는 제주의 수호신이자 제주와 동일시되는 존재로 상징된다. 시련과 도전으로 점철된 제주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증인이다. 

또 생물권보전지역·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 지정 등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의 3관왕 달성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 '종 다양성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의 절반가량인 2000여종이 자생하고 있고 섬매발톱나무·돌매화나무 등 희귀·특산식물이 90여종, 국내에서는 제주에만 분포하는 '한정분포 식물자원'이 320종에 이르고 있는 등 세계적인 보존지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환경자산을 관리하는 행정 마인드는 지나치게 안일하거나 함량미달이다. 심지어 이런 마인드로 자연의 가치를 키우겠다며 운운하고 있어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5년전, 한라산의 관리권 이관 여부가 제주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2011년 6월 국립공원 관리를 일원화하기 위해 그 동안 제주도가 관리해 오던 한라산국립공원을 국가가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제주의 상징이자 도민들의 정서적 고향인 한라산국립공원에 관한 모든 업무가 국가사무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당시 지방분권위는 한라산국립공원의 관리권 이관 여부를 2차례에 걸쳐 제주도에 통보해 의견을 내도록 했으나 의견이 없자 환경부는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한라산국립공원의 관리권 이관을 도에 공식 통보했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안 제주도는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열어 관련 공무원을 서울에 급파해 한라산국립공원의 관리를 제주도가 다시 맡을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했으나 지방분권위는 대통령 재가까지 났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안일한 대응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도·도의회 등 제주사회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부처를 방문해 한라산이 제주에서 차지하는 특수성을 설명하는 등 '제주 존치'를 설득했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같은 해 8월 제주 이관을 요구하는 도민들의 여론을 수용해 한라산국립공원을 제주도가 직접 관리하도록 재가하면서 '한라산국립공원의 관리권 파문'은 일단락됐다. 도는 당연히 한라산국립공원의 체계적·종합적 관리 강화를 약속했다.

이제는, '한라산국립공원의 지위 박탈'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환경부는 최근 "한라산이 '조릿대 공원'이 돼 국립공원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올 수 있어 제주도가 심각하게 이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강한 번식력으로 다른 고산식물을 고사시키면서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꼽히는 조릿대가 한라산 정상 턱밑까지 잠식하면서 희귀·특산 식물자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같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관련 전문가들이 각종 심포지엄이나 토론회를 통해 수차례 지적했으나 귀담아 듣지 않다가 환경부가 경고하자 부랴부랴 전문가들을 모여놓고 대책을 만들고 있다. 또 '뒷북 행태'다. 그래서인지 환경부의 경고에서 '제주도가 한라산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가'하는 비아냥도 섞인 것 같다. 

원 도정은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온갖 미사여구보다는 한라산 생태계 보전을 위한 실질적이고 실효성있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 것이 도정의 진정성일 것이다. 반성과 쇄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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