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 차장

최근 유력한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대등한 대결을 펼치고 있는 버니 샌더스. 돌풍의 주인공 샌더스는 수십년간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청하며 무소속으로 활동해 온 미국 정치계의 아웃사이더다. 그는 지난 2010년 부자 감세안의 2년 연장 법안 처리를 반대하며 8시간37분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해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샌더스의 필리버스터 기록이 아니다. 그가 40여 년간 펼쳐온 정치적 행보다. 샌더스는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하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제안해 왔다. 샌더스는 선거에서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숱하게 패배할 때에도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토론회를 가졌다. 중요한 의제는 유력 정치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저소득층과 노동자의 고충을 듣는 자리에서 만들어졌다. 그러자 기존에 안건으로 올라오지 못했던 복지제도들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경쟁 후보들도 덩달아 샌더스의 의제를 중요하게 다루게 되었다.

원래 해적을 뜻하는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라는 뜻으로 소수당이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수단이다. 미국 역사상 대표적인 필리버스터 사례는 1935년 16시간을 연설한 휴이 롱 루이지애나주 상원의원, 1957년 24시간18분을 연설한 스트롬 서먼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등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서는 필리버스터를 진행할때 의사와 무관한 내용으로 발언을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번호부나 성경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끄는 사례도 있다. 

야 3당이 일명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지난달 23일 오후부터 9일간 진행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2일 새벽 종료됐다. 이번 사태를 여야의 정쟁으로 보는 시선도 있고 참신했다는 평가도 있다. 법안 통과 여부로 판단하면 필리버스터는 한낱 정치적 이벤트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의 진정한 의의는 관련 법안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이번 사태는 국회밖에서도 하나의 '열풍'을 만들어냈다. 이번에 촉발된 관심을 다양한 의제로 끌어들이고 '토론과 협상'이라는 민주적 가치가 활성화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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