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고희를 넘긴 오늘에 이르도록 오직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온 순전한 제주토박이지만, 오늘날 내 눈앞에 펼쳐지는 우리 고장의 모습엔 때로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제주의 산·들·바다, 그 아름답고 정겨운 풍광들이 시나브로 '제주다움'을 잃어가는 것만 같아 적잖이 걱정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에 관한 한 사실 문외한에 가까운 한 논객에 불과하다. 정책당국자도 아니고, 학계나 관련 분야 종사자도 아니며, 지역개발이나 환경전문가도 아니다. 그렇긴 하나 그냥저냥 배만 부르면 하루하루 세월 가는 한낱 과객(過客)이 아니라, 내 딴엔 높은 자긍심과 해맑은 영혼을 지닌 제주도민이다. 

지금 제주는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산·들·바다로, 도시·농어촌으로 온통 정신이 없다. 어느새 거리는 거리대로 'ㅎ'씨 차량들이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공항은 공항대로 렌터카들의 전횡이 도민의 인내심 한계를 저울질하고 있다. 관광객은 그저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양적 증가만을 최상의 가치로 삼을 일인가! 관광산업으로 우리가 꾀하는 것은 오직 경제성장일 뿐, 정신적·문화적 경제성 따위는 하릴없는 룸펜들의 타령일 뿐인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더니, 근래에 이르러선 저들이 호텔, 렌터카, 식당 등 관광 사업을 직영하기도 한다. 이러다간 도민들은 언젠가는 단순고용 인력으로 전락하고 마는 해프닝 아닌 불행의 시대가 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가슴 섬뜩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산·내·들과 바닷가로 나가 보면, 스위스 골짜기에서나 볼 수 있는 단아하게 꾸려진 낯선 이층 주택들이 불그레한 당근빛 지붕을 머리에 이고 들어서있다. 이름마저 펜션이니 게스트하우스니 생소하다. 이러다간 오래지 않아 제주의 전통 건축양식은 온데간데없게 되고, 관광객들도 이를 제주의 전통가옥으로 착각 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어디 그뿐이랴, 해변엔 잠시라도 사람들의 눈길이 머무를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이른바 비치 카페(beach cafe)가 즐비하다. 이 또한 대부분은 외지인들 차지다. 주민들은 그저 집값, 땅값을 시세보다 더 쳐준다는 구슬림에 속절없이 주인이기를 포기하고 만다. 이러한 추세는 비단 바닷가의 집 한두 채에 머물지 않는다. 경관 좋은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풍문이 아닌 실상임이 여실(如實)하다. 

제주가 가진 보물은 무엇이며 제주가 자랑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어림잡아 보더라도 독특한 기후와 식생(植生), 화산섬의 지질구조를 가진 한라산과 오름들, 그리고 제주의 허파라 할 숲, 밭과 돌담, 전통가옥과 다양한 민구류(民具類), 복식(服飾)과 음식, 해녀문화 등 유형의 자연유산이며, 신화와 설화, 민속, 민요, 고유하고 독특한 언어체계를 가진 제주어(濟州語)와 훈훈한 인심 등 무형의 정신유산이 아닌가!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우리가 정작 자랑스럽게 내보여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유·무형의 자산과 가치들이다. 이는 또한 비단 관광소득이라는 경제성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소중한 전통문화의 전승·보전과 정신문화적 자산의 공유·확산이라는 차원에서 조명해 볼 문제이다. 이러한 의지의 확립과 R&D, 그에 따르는 투자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필자는 감히 당국을 비롯한 관계 요로에 정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언제까지 진부한 '친목회 볼거리 관광'이 떨구고 가는 부스러기 낙수(落穗)에 의존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변화는 발전을 견인해 낸다. 그래서 두 단어는 마치 동의어인 양 구사된다. 그러나 변화가 합리적 목적도 없고 확실한 방향도 없이 그저 이전에 비해 바뀌고 달라지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변화는 변천일지는 몰라도 발전은 아니다. 지금 제주는 엄청난 변화상황에 맞닥뜨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의 저변에 과연 '제주다움의 정체성'이 담보되고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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