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흑인불량배들과 어울려 싸움을 일삼는 아이가 있었다. 여덟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초등학교 때는 항상 꼴찌를 도맡아 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나중에 존스 홉킨스 대학병원의 의사로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그는 모든 의사들이 포기한, 하루 120번의 발작을 일으키는 네 살짜리 악성뇌종양환자를 수술해서 완치시켰으며 세계에서 처음으로 머리와 몸이 붙은 샴쌍둥이를 분리하는 데 성공한 벤 카슨이다. 

그가 중학교 시절부터 분발하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니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달래고 격려하며 이런 말을 끊임없이 반복해 들려주었다. "벤, 너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노력만 하면 할 수 있어" 어머니의 믿음과 격려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돼주었다. 

어느 지역의 군 관내 52개 초·중·고교에 물품을 기증하는 장학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장학회 이사장은 인사말을 하는 도중에, 그가 학생시절에 은사가 해준 격려의 말을 소개하면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울먹이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어떠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저는 선생님이 해주신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래, 나는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 마음을 달래면서 어려운 일을 극복하곤 했습니다" 선생님이 해준 말 한 마디는 그의 가슴에 살아 있으면서 어려울 때마다 그를 격려해주고 힘과 용기를 내게 해주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원천이 됐던 것이다.

영화 '쥐라기 공원'의 촬영지인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 지금은 살기 좋은 관광지가 돼 있지만, 1950~70년대에는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던 곳. 미국의 소아과·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이 1955년 이 섬에서 출생한 신생아 833명을 18세가 될 때까지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에 착수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심리학자 에이미 워너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833명 중에서도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의 삶을 살폈더니, 3분의 1인 72명은 출생과 환경이 좋지 않았음에도 훌륭하게 성장했던 것. 놀라운 결과를 만든 비밀은 단순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무조건 믿어주고 응원해 준 사람이 한 사람만 있으면 아무리 끔찍한 일도 견디고 밝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클 수 있었다는 게 그것이다. 

나는 이순신 장군의 두려움과 용기를 묘사한 '명량'을 여러 번 보았다. 겨우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대적해야 했던 장군은 내심 두려웠다. 참모와 병사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울돌목의 소용돌이를 몇 번이고 찾아가 살피며 그는 생각했다.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병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죽을 각오로 나가 싸웠기에 마침내 열 배가 넘는 왜적을 대파할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나락에서 다시 일어설 힘-회복탄력성을 스스로 만들어내신 분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지금 나라가 어렵다. 곤두박질치는 조선(造船)·자동차·전자·금융·농목축수산업 등 어렵지 않은 분야가 없다. 나라에는 리더십이 실종된 듯 입만 열면 누구누구를 탓하는 '네 탓이오'가 만연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일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낸 이순신 장군처럼, 누가 우리를 도와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우리 민족의 끈질긴 회복탄력성을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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