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논설위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들을 선출한 총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돼간다. 모든 게 엉망인 상태에서 투개표가 진행됐다. 선거라는 게임의 기준과 원칙을 제대로 정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큰 정당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는 너무나도 부실하고도 불쌍한 집단으로 비쳐졌다. 마지막에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이번에는 바르게 하겠노라고 읍소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후보들도 많았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은 냉정하고 현명했다. 국민들은 선거의 들러리가 아니고 주인임을 바로 보여줬다. 제대로 투표했고, 개표과정을 끝까지 주시했다. 그리하여, 정치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제, 새로운 국회를 조직하기 위해 각 정당이, 그리고 당내의 계파들이 열심히 계산하고 있다. 주어진 조건을 전제하면서도,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국면이 됐다.

모든 예측을 뛰어넘는 선거혁명을 이뤘으니 그 결과는 자연히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까?

먼저, 선거의 룰을 정하는 일이 매우 어설프게 미봉한 채로 선거가 진행됐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승자 한사람을 가리기 위해 유권자들의 권리가 절반 정도는 무시되는 현실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경기규칙이 부실하더라도 승패는 가려진다. 그렇지만 그 규칙이 합리적인지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지 점검해야만 한다. 

야구와 비교해 보자. 경기 중에 나타나는 모든 움직임이 계량되고 기록되는 경기이기에 많은 통계가 나온다.

그러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홈에 들어온 공격수들의 숫자를 비교해 정한다. 안타나 홈런의 숫자, 투수의 투구수나 야수들의 수비능력 혹은 주자들의 빠르기와 재치 등등 수준 있는 관중들이 세심하게 살피는 요소들은 매우 많다. 이들은 경기력을 드러내는 기록으로 가치가 있지만, 승패에 대해 직접 발언할 권리는 없다. 

학창시절 축구경기를 보면서 응원하던 때의 일이다. 정규시간 경기결과 서로 득점이 없는 경우가 생겼다. 연장전에 대한 준비가 없었는지 그때까지의 기록을 평가해 승패를 정하게 됐다. 상대 팀은 코너킥을 하나 얻은 것이 결정적인 승점으로 작용했다. 전반적으로 밀린 경기였지만 못내 아쉬웠다.

제대로 된 축구 시합이라면 골을 갖고서 결정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승부차기를 통해서라도 결판내는 길을 피하고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못내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승패를 가르는 일은 다시 듣거나 보지 못했다. 

전에는 축구에서 승리 2점, 무승부 1점, 패전 0점으로 전적을 누적하던 때가 있었다. 폐단이 드러난 것이, 많은 팀들이 수비에 치중했고 무승부를 목표로 경기를 운영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자연, 관중들에게는 재미가 덜한 경기들이 많아지게 됐다. 그래서 도입된 새로운 제도가 승리 팀에게 3점을 주는 계산이었다. 이에 따라 공격적인 축구가 대세가 됐다. 농구에서도 장거리 슛을 3점 득점으로 정하자 장거리 야투의 성공률이 크게 달라졌다. 

게임의 룰을 놓고서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오히려 사회구성원 다수가 적절하다고 인정하는 합리적인 제도인지 답해야 할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언론의 주장을 본다. 하지만 4년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게 과연 황금분할인가?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포함해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결정권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왕정시대 혹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통하던 생각을 가진 듯하다. 변화를 선택한 유권자들의 수준에 미달하는 정치업자들이 자칭 지도자로 행세하는 꼴을 계속 봐야 하는가? 안타까운 일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