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 이사대우·정치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들어선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이 지난 2월말 준공과 함께 대양해군 시대를 열었다. 군수지원 업무를 맡은 해군기지전대와 이지스구축함 등 해군제7기동전단이 자리한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은 준공식 축하포를 쏘며  대한민국 남방 해상교통로와 해양주권 수호의 '21세기 청해진'을 국내·외에 과시했다. 

특히 정부·해군은 함정 20여척과 15만t급 크루즈선박 2척이 동시 정박 가능한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해양주권 수호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또 내년부터 크루즈부두가 운영되면 2020년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찾는 '세계 크루즈관광 허브'로 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군의 주장대로 민항과 군항을 갖춘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해양주권 수호와 세계 크루즈 관광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도민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제주도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동의한 2007년 5월 이후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준공까지 햇수로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도민갈등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탓이다. 

돌이켜보면 제주도가 찬성률이 높은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의 최우선 대상지로 발표한후 찬성과 반대로 나뉜 주민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설촌 이후 유지됐던 공동체 마저 붕괴됐고, 도민사회 역시 찬·반 갈등에 휩쓸리며 '세계평화의섬 제주'가 '갈등의 섬'으로 전락하는 후유증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제주사회 찬·반 갈등 악화를 우려한 탓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제주민군복합항 관광미항 준공식에서 지역사회와의 상생·화합을 강조했다. 준공식에 참석하지 못한 박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준공식을 계기로 그동안의 갈등을 극복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화합하는 뜻 깊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국무총리·국방부장관·해군참모총장과 제주도민에 부탁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당부는 한달만에 무용지물로 변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상생·화합 메시지가 제주사회의 해묵은 해군기지 갈등 해결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해군이 지난 3월28일 강정주민 30여명 등 해군기지 반대 단체 회원·활동가 120명에게 1공구 공사지연에 따른 34억여원의 구상권(손해배상청구)을 청구하면서 정부와 빚는 도민 갈등 역시 악화일로에 놓였다.

해군은 한발 더 나아가 원희룡 지사를 비롯한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인 3명, 제주도의회 여·야 의원 모두가 "준공된 해군기지와 지역민이 상생해야 한다"는 구상권 철회 요구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라 제기된 만큼 법원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자 변호사 출신인 원 지사는 지난달 20일 도의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 "법 좋아하는 사람치고 망하지 않는 사람 없다"고 일갈하면서 "승자와 패자가 있는 소송이 상처를 치유하기 보다 영구화시킨다"고 철회를 재차 요구했지만 해군은 요지부동으로 일관, 빈축을 사고 있다.구상권 철회 거부가 국군통수권자의 지역사회 상생·화합 명령을 어기는 하극상을 넘어 제주에 둥지를 틀면서도 도민들과 화해·상생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 '독불장군'의 무력 시위와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해군이 갈등해결 과정에서 '나'의 생각을 계속 일방적으로 관철하려면 상대인 강정마을 주민 등 제주도민들과 함께 있을 이유가 없다. 도민들이 해군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는 존재이기에 법을 앞세워 구상권 청구의 고집을 피우면 갈등 해결은 요원할 뿐이다. 

해군은 강정마을에 둥지를 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제주도민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음을 새겨야 한다. 구상권 철회를 고집하면 20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오만한 권력을 심판했던 것 처럼 언제든지 지역사회와 상생을 거부하는 해군을 단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선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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