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논설위원

얼마 전에 교양 강좌를 들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강사가 계속 '다르다'고 해야 할 상황에서 '틀리다'고 말씀 하셔서 당황스러웠다. 일반 사람도 그렇게 쓰면 안 될 터인데 그런 강좌에서 그런다면 더욱 안 될 터였다. 지적을 했으나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옛 고사성어에 퇴고(推敲)란 말이 있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인 가도가 '스님이 달빛 아래서 문을 민다(推)'고 하는 게 좋을지 '문을 두드린다(敲)' 하는 게 좋을지 한참 고민했다는 고사(古事)에서 유래된 말로, 글을 지을 때에 단어의 선정에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유명한 작가가 문하생이 쓴 글에서 '이름 모를 풀꽃'이라는 글귀를 보고는 "이름 없는 풀꽃이 어디 있느냐?"고 질타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필자도 여러 해 전에 자서전을 내면서 제목을 '큰바위얼굴을 그리는 소년'으로 할까 '큰바위얼굴을 꿈꾸는 소년'으로 할까 하고 몇 달간 고민한 적이 있다.

두 단어 모두 우리 고장에 '큰바위얼굴'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필자라도 큰바위얼굴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꿈꾸는'으로 결정했다.

또 '꿈꾸는'으로 할지 '꿈꾸던'으로 할지도 고민거리였다. '꿈꾸던 소년'이라고 하면 어릴 적에 그런 꿈을 꿨다는 의미이고, '꿈꾸는'이라고 하면 지금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는 의미가 있어서 '꿈꾸는'으로 정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언어란 뜻을 통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 뜻만 통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말씀하기도 한다.

또 단어란 시대가 바뀌면서 그 뜻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 틀렸다고 영원히 틀린다고 하기 어렵다. 많은 단어들이 심지어 반대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틀리다'와 '다르다'는 그 뜻이 너무나 다르므로 혼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고 얘기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민족이나 성, 심지어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민주시민으로써 우리는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또는 가치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의견을 상대방이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난 지도 벌써 70년이 다 돼 가는데 정치권에서 타협이 쉽게 이뤄지지 못 하고 계속 싸움만 하는 것은 나와 다른 의견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요즈음 정치권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보노라면 이 분들이 과연 정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는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게 줄기차게 반대하던 사안도 입장이 바뀌면 하루 사이에 태도가 바뀌어 적극 찬성으로 돌아서고, 그토록 열심히 추진하던 법안도 야당이 됐다고 태도가 돌변해 반대를 일삼는다.

정치란 다양한 의견을 조화하고 조절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택하기 위한 행위라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나의 이익을 생각하기에 앞서 공익을 생각하고 우리의 이익 보다는 옳고 그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정도(正道)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의논한다면 타협 못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정치권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우리들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정확히 구분해 쓰며,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해 하루 빨리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나고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힘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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