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부국장 대우·경제부

오는 11월 미국 51개 주를 '잠 못 드는 밤'으로 만들 대통령 선거의 본선 대진표가 확정됐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의 대결은 미국 대선 사상 첫 남녀 성(性)대결로 치러지게 됐다. 두 후보는 성별만큼이나 대조적 행보를 걸었다. '인권변호사'와 '부동산 재벌'이라는 출신 배경에서부터 '주류'와 '아웃사이더'라는 정치적 위상, '흑인 진보층'과 '백인 보수층'이라는 지지기반, '개입주의'와 '고립주의'에 입각한 세계관까지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을 찾기가 어렵다. 정부나 정치권, 금융시장은 이미 긴장 상태다. 대선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일희일비한다. 사실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흐름이 보여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쏠린다.

먼저 대선 주자로 낙점된 트럼프를 보자. 경선과 그 이후 과정들에서 그가 쏟아낸 '막말'들은 당 지도부까지 고개를 돌리게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40대 이상 백인 노동계층'의 비관론은 그에게 '대통령 후보'라는 기회를 줬다.

그들이 경멸하는 '비주류' '부호'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후보이지만 그들의 '절망'을 짚어내는 말들에 환호했다. 그들이 겪고 있는 것이 단순히 '가난한 상태'가 아니라 흑인·히스패닉·동양인 등 이민자들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하고 사회적 지위가 하락한 때문이라는 지적에 동의하며  '트럼프 신드롬'까지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좋은 일자리가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인종갈등까지는 아니지만 제주의 현실도 비슷하다. 제주 경기가 좋아졌다는 말에는 어김없이 지역내 체감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이 따라간다. 젊은 층들은 제주에 좋은 일자리가 없다고 불평하고, 정작 중소기업들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정착주민이나 타 지역에 적을 둔 기업들의 경제적 수준이 상승하는 데 대한 역차별 논란도 비일비재하다. 이대로라면 다음 지방선거에 기상천외한 '신드롬'이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 얘기도 해보자. 남편을 대통령까지 만들었고 스스로도 대통령 후보가 된 '수완'은 전업주부에서 빚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일하는 엄마'(Working mom)로 치열하게 싸웠음이 분명하다. 현재도 '할머니'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일할 권리가 신장된데 따른 보육 시스템 강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현실은 우울하다. 요즘 뜨거운 '맞춤형 보육'전쟁 얘기다. 0~2세 영아를 어린이집에 하루 12시간 맡길 수 있는 종일반 자격 신청을 놓고 전업주부 '차별'은 물론이고 '일하는'의 기준을 놓고 매일같이 설전이 펼쳐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7월 '맞춤형 보육제'시행을 앞두고 전업주부와 육아휴직자의 이용 시간을 하루 7시간 미만으로 못 박았다. 종일반 이용을 위해서는 △근로 △취업준비 △임신 및 출산 등을 입증하는 서류를 갖춰 심사를 받도록 했다. 이쯤되면 출산장려정책이나 경력단절여성 복귀, 여성 경제활동 강화 등 관련 정책 모두가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직장어린이집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다 가뜩이나 맞벌이 비율이 높고 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 형태로 근무하거나 가족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의 수가 많은 제주 실정에는 특히나 이런 상황들이 반가울 리 만무하다.

미국의 46대 대통령이 누가 될지 그리 궁금하지 않다. 그보다는 '제주 미래비전'을 앞세운 약속들에 방향과 답이 알고 싶다. 인기영합주의의 '쓴 맛'을 보기에 도민들의 눈은 매섭다. 물론 이익을 앞세워 목소리를 높일 때도 있지만 그동안 학습된 본능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능력은 지니고 있다.

제주 미래비전의 모토는 '청정'과 '공존'이다. 누구든 '손해'를 토로하기에 앞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6월 총기사고로 결말이 난 인종갈등의 현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을 대신해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처럼, 적어도 진정성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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