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언젠가 특강시간에 좌중에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여러분의 24시간 중 문화행사나 예술행사 또는 독서·창작강의·실기강좌의 참여 등, 자발적으로 문화예술에 투자한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순간 좌중은 머쓱한 표정과 함께 묵묵부답이었다. "그럼 여러분은 주말에 대부분 경조사로 바쁘십니까"했더니 이번에는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덧붙여 주중에도 마찬가지라는 대답이었다. 이 문답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제주섬의 최고의 문화행사는 전통문화인 경조사다. 

결혼식, 장례식 등 제주의 성인, 적어도 30대 이후부터는 직장·인간관계 때문에 경조사를 챙겨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경조사는 챙긴다. 그러므로 제주섬에서는 경조사를 넘어서는 자발적 참여에 의한 문화행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원도정 들어 '문화예술의 섬'이 화두다. 그만큼 '문화예술의 섬 조성'이라는 도정문화정책의 목표가 지속적으로 반복돼 방송, 언론, 의회 등 담론 생산그룹마다 언급해 온 탓에 원도정 내내 문화와 예술 그리고 '문화예술의 섬'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중요한 무엇이 됐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다양한 기회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회가 널려있다. 그러므로 주민들이 가까이 손을 뻗으면, 소위 제주말로 '엎어지믄 코 박아질 디' 다양한 예술적 경험의 기회가 널려 있는 것이다. 요즘은 문화누리카드, 통합문화이용권 등 공공비용으로 무료관람권까지 주지 않는가. 또한 문화예술 인프라는 한 세대전과 비교하면 경천동지할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게믄 뭐해 바빵 가보지도 못하는 디"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얘기한 분도 경조사는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경조사는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생활이며, 예술과 엮어진 생활은 그림의 떡이다.

어떤 사람들은 볼맨 소리를 한다. "에에! 문화예술의 섬이렌 헤여봐짜 무시거 허는 일도 어신 게" 또는 "소리만 요란했주 문화예술이 밥멕여줘! 쓸데어신 거만 가랐닥 가랐닥", "2년이나 지나신디 어느 거라? 문화예술의 섬" 라고. 하지만 '문화예술의 섬'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24시간 중 문화예술과 관련된 시간대를 넓혀 가는 것,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예술의 맛을 찾고 즐기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 즉 주민이 늘어나면 그것이 바로 문화예술의 섬이 되는 것이다. 

물론 문화예술의 섬이 되기 위해 인프라와 채워야 할 많은 제도적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문화예술의 섬'은 결국 나의 시간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삶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늘려보자. 자신의 여가시간을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관람하며 소비해보자. 자신의 어린 날 손재주를 떠올리며 악기를 새로이 배우기 시작하든가, 아니면 실기강좌를 수강하면서 생업과 관계없는 예술적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창의적 세계의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경험의 기회를 가져보자.

문화예술의 삶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열어줄 것이다. '문화예술의 섬'은 멀리 있지 않다. 경조사에 쏟는 시간의 일부를 문화예술의 시간으로 가져오는 것 그것이 '문화예술의 섬'에 첫발을 디디는 길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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