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논설위원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건축계에서는 노벨상과 같은 상이 있다. 바로 프리츠커상이다.
1979년 하얏트재단 전 회장인 프리츠커 부부가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현재까지 일본은 6명, 중국은 지난 2012년 왕 슈가 수상했지만 우리나라는 수상자가 없다. 이제는 철거돼 사라진 서귀포 중문 '카사 델 아구아'의 건축가인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이 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인 2000년 프리츠커상은 네델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가 수상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력이다. 1944년생인 그는 유년기에 작가인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4년간 살았으며 청년이 돼서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환경이나 도시와는 무관해보였던 이 청년은 어느날 건축에 흥미를 느끼고 영국의 건축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4년간 공부한 그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건축가로서의 첫 발을 딛는다.
'렘 쿨하스'가 뉴욕 한 복판에서 처음 한 일은 건축이나 도시설계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서있는 땅 위의 거대한 마천루을 보면서 이 건물들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졌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욕망은 무엇인지에 호기심을 느꼈다.

이 호기심의 결과가 그의 첫 저서인 '정신착란의 뉴욕'이다. 1978년 출판된 이 책은 이듬해인 1979년 뉴욕 평론계의 극찬을 받았고 젊은 청년 '렘 쿨하스'는 책 한권으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건축가가 된다.

그의 저서인 '정신착란의 뉴욕'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뉴욕의 마천루와 건축들, 골목길과 클럽들은 사람들의 욕망이 부딪쳐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카오스와 같이 혼돈된 문화, 무질서하게 엮여 있는 관계들이 현대도시의 모습이며 뉴욕이라는 것이다. 

그의 건축은 이처럼 현대도시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했고 22년 뒤 그는 프리츠커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실 제주를 민낯 그대로 본다면 뉴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본다면 제주는 수많은 욕망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신착란의 도시가 되고 있다.

이 숨 막히는 도시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숨통 트이는 언급을 렘 쿨하스는 그의 책에서 하고 있다. 

그의 책에 '카펫트'라고 부제가 달린 글 중 일부를 보자. '1850년 뉴욕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더 이상 도시의 여유공간을 찾을 수 없게 됐다. 뉴욕시는 계속 늘어나는 인구가 도시의 공간을 모조리 덮어버리기 전에 서둘러 공원을 조성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카펫트가 뉴욕 맨하튼 한 복판에 있는 센트럴파크다. 그리고 1857년 프레드릭 옴스테드가 '시민들이 답답한 도심에서 최단 시간 탈출해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는 신념으로 센트럴파크 설계에 착수했다.

모든 도시계획의 귀감이 되는 센트럴파크의 시작이 뉴욕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라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인구가 증가하면 할수록 집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역으로 그 많은 인구가 땅을 다 차지하기 전에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멋지지 않은가. 

이 위대한 발상이 전무후무한 센트럴파크를 만들고 뉴욕 시민의 자랑이자 명소가 됐다는 점이 멋지지 않은가.

이러한 점에서 시민복지타운 내 공공청사부지에 아파트를 짓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팍팍한 삶과 답답한 일상에서 시민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위대한 발상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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