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밭일을 하고, 물이 차면 물질하고, 어둑어둑해지면 물허벅을 들고 나가던 두 아이의 엄마, 시장의 한 모퉁이에서 채소를 팔며 정신적·경제적 독립생활을 하는 고령의 할머니.

 제주여성이라면 누구나 보았을 법한 우리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의 모습이다.

 제주의 독특한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제주여성의 강인한 정신력과 제주를 지탱해온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제주도가 펴낸 「제주여성문화」는 제주 여성이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묻고 있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들의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제주여성의 참 모습을 재조명하고, 문화창조 능력을 재발견하고 있다. 오늘을 사는 미래의 딸들이 가져야할 자의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책은 「제주도지」 편찬사업 일환으로 제주 문화자료총서 중 여덟 번째로 나온 책이지만 순수하게 여성의 시각으로 접근됐다. 출간에 참여한 여성 전문가들은 세시풍속과 먹거리, 입을거리, 신화와 가족을 통해 제주여성속내(?)를 바라보고 있다.

 이 책에는 ‘가족과 결혼생활’(김혜숙), ‘속담으로 만나는 제주 여성어’(문순덕), ‘제주 여성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현진숙), ‘노래에 나타난 제주 여성’(좌혜경), ‘제주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김지순), ‘문화영웅으로서의 여신들’(김순이) 등 6편이 실려있다.

 ‘가족과 결혼생활’편에서는 한집에 살아도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 철저한 살림 분리, 물질해서 번 돈은 남편과 합치지 않는 개인단위의 경제생활, 맘에 안 들면 남편과의 이혼도 서슴지 않는 탈(脫) 가족주의를 예로 들면서 유교적 세계관과 거리가 먼 제주여성만의 독립의지를 말해주고 있다.

 특히 과부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져도 ‘봉근아이(주워온 아이)’ 하나 얻은 것이라 생각하고, 재혼·삼혼 등 쉽게 헤어지고 쉽게 만나는 자유로운 혼인체계는 혼인이 ‘인륜지대사’인 우리나라 전통문화와는 완전히 대치된다.

 그러나 여성의 평등한 권익과 실질적 경제주체, 독립적 의지는 남성을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는 가부장적 관습과 남아선호사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주여성의 이율배반적 모습에서 역습을 당한다.

 육아·노동(해녀)·세시풍속 등에 얽힌 각종 여성 비하어는 제주 여성의 행동반경과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옭아맸다. ‘속담으로 만나는 제주 여성어’편에서는 ‘제 벌인 방에 여자가 들어가면 나쁘다’, ‘여잔 익은 음식이다’(여자는 익은 음식이다) 등을 소개하면서 결코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없었던, 남성의 소유물이었던 제주여성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문화 영웅으로서의 여신들’에서 제주 여성의 강한 자의식을 부각시키면서 마무리된다. 필자인 김순이씨는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 할망과 농경의 여신 자청비, 바다의 여신 영등 할망을 소개하면서 독특한 제주문화의 중심축에 있는 제주 여성의 ‘문화영웅’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씨는 신화가 전해지는 동안 원형이 상실되고 유교문화로 가차없이 가지치기 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 여신이야기들의 찢겨진 조각들을 다시 모으고 숨겨진 의미와 상징성을 찾아내는 것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메마른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가치 있는 삶을 향해 자기를 확대해 가는 의지, 바로 제주 여성과 영웅과의 영적(靈的) 연결고리를 잇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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