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최근 제주도내 문화관련 행사들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사회주의 국가에 버금가는 공공지원의 시대가 됐음을 실감한다. 

도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행사에 공공예산이 지원되면서 공짜 천국을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이미 문화예술의 섬인 셈이다. 예술인들의 수입이 불과 100만원 대의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에서도 일반 주민들에게 열려진 장은 공짜일색인 것이다. 심지어는 공짜라도 관객이나 수강생이 없어 고민이라는 별난 고민까지 겹치고 있다.

재작년 경험이다. 필자가 소장으로 있던 민간연구소에서 몇 개월을 공들여 문화강좌를 기획했다. 그리고 언론이나 SNS를 통해 홍보를 내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강생들을 모집한 바 있었다. 그런데 모 시민이 전화로 "아니 요즘 세상에 유료강좌가 어딨느냐"며 "남들은 다 무료로 진행하는데 당신들만 돈을 받느냐"고 울대를 세웠던 거였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소감부터, 공짜 좋아하는 얌체족만 늘었다는 둥 이쪽의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찌해서 이렇게 됐는가. 사실 문화예술의 섬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부터 이러한 추세는 이어져 왔다. 몇년 전부터 공공예산을 지원받는 행사는 요금을 받지 않는 정책이 이어졌던 것이다. 급기야 공공지원금을 받으면 안된다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이러한 지원은 분명 도내 문화예술단체들이나 소집단 등 행사를 만드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도내에서 벌어지는 축제, 전시, 공연 등 각종 익명의 도민을 대상으로하는 행사들은 대부분 공짜행사가 돼버린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앞의 그 시민의 울대높인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러면 공공예산의 지원은 넘치는 것인가. 그것도 사실은 문제가 있다. 실제로 공공예산의 비율은 전체 문화예산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또 지역문화예술인들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의도대로 적절하게 지원되지 않는 바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방식대로 예산이 지원돼야하는데 실제와는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소액 다건의 행사 위주의 지원방식도 재고해야 할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의 경우 과거에는 직접 티켓을 팔거나 후원회를 확보하는 등 치열하게 노력했으나 공공예산이 지원되면서 이러한 노력이 시들해지는 일부단체들이 나타나는 등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한다. 굳이 땀 흘리며 티켓을 팔지 않아도 공연을 올릴 예산이 있기 때문에 오는 병폐인 것이다. 그 결과 관객이 들지 않는다는 볼맨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공공예산은 양날의 검이다. 어느 일면만으로는 문화예술 생산자와 향수자 양자에 공히 상처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겐 약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독이 되는 역효과를 동시에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예산은 이러한 순기능과 역기능을 고려해 정교하게 지원돼야 한다.

공공예산지원의 결과가 창작자와 향수자 모두에게 약이 되게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의 섬'의 기초는 작품 한 점, 책 한 권의 값을 기꺼이 지출하는 시민이라는 점이다. 정책의 출발점도 여기에 맞춰져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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