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제주관광대학교 기획부총장·논설위원

필자는 최근 책상 벽에 '난득호도(難得糊塗)'라고 써붙여 놓았다. 그 이유는 요즘들어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득호도'는 청나라 때 문예화가인 정섭이 남긴 사자성어로 "총명해지는 것도 어렵지만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보이는 건 더 어렵다" 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모르는 걸 아는 체 하는 것도 어렵지만 아는 걸 모르는 체 하기란 더 어렵다는 말이다. 

알고 있더라도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교만하지 말고, 한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내려 놓고 바보처럼 굴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처럼 역사적으로 혼란과 난세가 계속되던 시대에는 현명한 사람도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며 혼란한 세상에 대처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기 위한 말인데,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필요한 처세가 아닌가 한다.

재산이 많고 학식이 뛰어나더라도 이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낮춰 어수룩하게 행동하는 처세로 대하고, 도덕적 소양과 인품의 격을 높일 수 있는 삶의 자세를 보이는 자만이 때가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TV방송을 보면 몇몇 말 잘하는 사람들이 출연해서 말장난 수준으로 사회이슈나 특정인을 함부로 평가하는가 하면, 모든 걸 다 아는 듯한 말투로 정치인을 평가하고 사회에 독설을 내뱉는 전문가들로 넘쳐나고 있다. 가만히 듣다보면 깊이 없는 얄팍한 지식수준의 내용을 말주변으로 포장하고만 있는 분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그저 재미로 볼 뿐 그 내용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제주에서도 그런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을 요즘 자주보게 된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아는 냥, 제주사회의 모순을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똑똑한 분들이 늘어가고 있다.

필자는 재미있어 듣고만 있지만 뒤돌아서면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필자도 말을 거들고 싶지만 그마저도 모르고 있기도 하고 그분이 좀 안되보이기 때문이다. 

요즘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를 통한 SNS의 정보를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서 아는 척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회심리적인 불안정서가 점차 팽배해 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첩보 수준의 정보를 알아 와서는 모든 내용과 모든 관련된 사람을 자신이 다 아는 것처럼 말로만 쏟아내다가 일이 구체화돼 추진을 부탁하면 그 사람을 그 정도까지는 잘 모른다고 한발 뒤로 물러나는 분도 있다.

옛말에 입이 재빠른 자는 허탄함이 많고 믿음성은 부족하며, 말로만 하는 자는 입으로 일어나 입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성자 고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영혼에 '난득호도(難得糊塗)'의 정신을 심어주신 분이었다. 추기경은 자신을 스스로 바보라고 칭하시면서 '바보가 바보에게'라는 잠언집을 통해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과 바보들이 궁극적으로 이긴다는 의미를 묵시적으로 전했다.

추기경은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그러므로 양귀로 두 번 듣고 세 번 생각하고 말하라"고 말했다. 그만큼 세상일을 알면서도 바보같이 모른척하기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제주사회는 관광개발의 문제, 사회안전문제, 쓰레기문제, 그리고 청년취업 문제 등 많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 

모든 도민이 아는 척하며 할 말도 많겠지만 우리보다 많은 경험을 해온 행정전문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일을 알아도 시간을 두고 조용히 지켜보는 어리숙한 자세, 살짝 배려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