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조냥정신, 이는 제주 선조들의 몸에 밴 절약정신을 의미한다. 추측하건대 '조냥(절약)'은 과거 제주인들의 경제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습관일 것이다. 지금이야 매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타 지역과의 교류도 활발하지만, 과거에는 섬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자체 생산과 소비를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화산섬인 제주는 토질이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생산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이러한 예는 '조조단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제주 여인들은 밥을 지을 때 더 궁한 때를 대비해 쌀을 한두 줌씩 항아리에 모아두었다고 하는데, 이 항아리가 바로 '조냥단지'다. 

오늘(25일)은 '금융의 날'이다. 작년까지는 저축의 날이었으나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면서 올해 명칭이 변경됐다. 금융의 날 자체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 날은 1964년에 제정된 엄연한 국가기념일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이었다. 하지만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외자도입도 여의치 않은 탓에 경제개발에 필요한 투자자금의 많은 부분을 국민의 저축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저축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 이 날을 제정하게 됐다.

1960년대 초반에 5%에 불과하던 가계저축률은 1970년대말에는 16%, 그리고 1987년 이후 90년대 중반까지는 20%를 상회했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고도성장을 거듭하여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권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우리 국민의 높은 저축열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경제는 저성장이 지속됨에 따라 투자의 기회가 줄어들고 저축보다는 소비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저축에 대한 인식도 예전만 못하다. 그렇다면 저축은 더 이상 쓸모없는 과거의 유물에 불과한 것인가.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소비하고 남은 돈으로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소비를 하는 것(Do not save what is left after spending, but spend what is left after saving)"이라고 말했다. 이는 저축이 시대를 초월해 합리적인 경제생활의 출발점임을 의미한다.

저축의 중요성은 경제생활 곳곳에서 확인된다. 첫째, 가계의 입장에서 저축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100세 인생'이 현실화 되고 있다. 이에 대비해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꾸준히 확충해 나가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개인의 안정되고 풍요로운 미래생활이 보장되기는 어렵다. 옛말에 '내 손에 쥔 떡 하나가 남의 손에 있는 떡 두 개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는 정부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저축을 통해 일찍부터 자신의 노후생활자금을 조금씩이라도 마련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국가경제의 미래 소득원 창출을 위해서도 저축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국내에서의 투자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이를 극복하고 수익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투자와 신성장 동력산업에 대한 투자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국민 개개인의 저축을 모아 큰 규모의 투자재원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축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2000년 이후 가계저축률이 4%대에 머물러 있는 등 최근 들어 가계저축률이 크게 낮아지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는 청년 실업, 부동산가격 상승, 고령화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저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진 데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의 날을 맞이해 제주인의 '조냥정신'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모두 저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보고 이를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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