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갑작스럽게 밝힌 개헌 추진 의사가 발언 뒷날 터진 청와대의 '최순실 국정 농단 게이트' 무마용으로 신뢰를 잃으며 논의가 중단됐다. 반면 중앙·지방 정치인 등 개헌론자를 중심으로 현 정부의 임기가 아니더라도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제주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시계를 멈추게 한 최순실 게이트로 개헌 발언을 꺼내기 힘든 상황이지만 이상봉 도의원은 엊그제 특별자치제도추진단 행정사무감사에서 "개헌 카드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지만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특별도의 헌법적 지위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원희룡 도정에 주문했다.

이 의원이 꺼낸 특별도 헌법적 지위 보장은 2006년 7월1일 출범 이후 10년간 도내·외의 학계·법조계 등 각계각층에서 공통적으로 제기해온 제주의 최대 현안이다. 특별도의 법적 지위가 헌법이 아닌 지방자치법에 규정된 결과 실질적인 자치입법권 및 자치재정권·조세자율권 확보가 미흡한 탓이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첫 출범한 특별도가 외교·국방·사법 등 국가 존립 사무를 제외한 고도의 자치권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요체이지만 중앙정부는 자치권 행사 범위를 지방자치법 이내로 한정, 다른 16개 광역자치단체에 비해 특별함을 부여치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의 지적은 도·의회가 자치입법권을 활용해 제주특성에 부합한 조례를 만들어도 전국 형평성 논리를 앞세운 중앙정부의 반대로 무산되는 현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도의회가 지난 2007년 도외지역 업체의 무분별한 렌터카 영업을 제한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조례'만 해도 상위법 위반을 주장하는 국토교통부의 대법원 제소로 좌절되면서 현재의 렌터카 폭증에 따른 교통난 심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자치재정권·조세자율권 미흡에 따른 특별도의 불이익도 심화되고 있다. 자치재정권이 출범 이전처럼 보통교부세 법정률 3%와 지방세로 한정, 중앙권한 4500여건의 이양에 수반되는 인건비·경상비 증가분을 도가 고스란히 부담, 지방 살림난이 매년 가중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는 도가 특별법 제4조에 명시된 국세의 세목 이양 및 제주지역내 국세 징수액 이양 요청에도 전국 형평성 논리로 10년째 이행하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가 약속한 고도의 자치권 보장이 공수표로 전락한 것은 특별도가 지방자치법을 개정한 새로운 광역자치단체의 한 종류로 법적 지위가 제한된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도·의회가 타지역과 차별화된 독자적인 조례를 만들어도 정부는 '법령의 범위내 조례 제정' '주민의 권리 제한·의무 부과 및 벌칙 제정은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지방자치법 제22조를 내세워 특별도의 자치입법권 행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때문에 제주특별자치도의 실질적인 자치입법권 확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법 제22조 적용을 배제시키는 포괄적인 특례 인정 등 헌법상의 지위 확보가 시급한 과제다. 헌법 지위를 확보한 홍콩·마데이라 처럼 실질적인 자치입법권 행사를 위해서는 특별자치도의 법적 지위를 헌법에 보장할때 가능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얼마나 갈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해결의 가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개헌 논의도 부상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특별자치도의 법적 지위를 헌법에 보장하는 도·의회의 논리 개발은 다른 지자체 보다 한발 앞서야 한다. 대한민국 지방분권 선도를 위해 출범한 특별도가 개헌 논의에 무관심하거나 헌법적 지위 보장 요구에 머뭇거리면 특별도 출범을 위해 4개 기초자치단체까지 폐지하면서 희생한 도민들의 불이익 개선은 커녕 제주가 다시 변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도·의회가 도민 이익 극대화를 내용으로 한 개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야 특별자치도 완성도 앞당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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