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장

붉게 물드는 단풍잎보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 향기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11월이다. 새벽부터 과수원으로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이 있고, 결실의 열매가 있는 이 시간은 섬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태풍 차바가 남긴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정성어린 한 땀 한 땀이 있었기에 감귤은 탐스럽게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을에 물드는 감귤 나무처럼 세상의 풍경이 아름답게 열리길 바란다. 

'나'만 잘 사는 게 아닌 '서로'가 잘 사는 위로와  격려의 시대를 펼쳐야 한다. 경제가치가 우선시되는 게 세상의 현실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다움이다.

낮은 곳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잊지 말아야 하고, 함께 가는 그 길을 준비해야 한다. TV광고 속에서는 호화로운 아파트를 소개하며 행복으로 오라며 손짓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방 한 칸의 여유로움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3평도 안 되는 방 한 칸에서 시름시름 누워 계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린 소녀 가장이 거동이 불편한 아버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책임지며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복지의 담론을 생각한다.

복지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다. 서로를 생각하며 나누며 베푸는 마음이다.

「혼자서 잘 살면 무슨 재민 겨」라는 책 제목처럼  마음을 나누는 동행이다.

이주민노동자들의 인권이 존중돼야 하고, 장애인들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 받아야 하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지 않아야 하고, 아이들이 편안히 커갈 수 있는 행복이 있는 제주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보건복지안전위원장으로 일하며 말없이 소외 받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알게 됐다. 자기를 내세우지도 않으며, 묵묵히 남을 위해 손길을 건네는 그분들을 볼 때마다 많은 걸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분들은 살림살이가 넉넉해 여유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먹고 살기 바쁜 데도 일주일에 꼭 몇 시간씩 시간을 내 봉사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였다. 

깊은 울림이었다. 이웃이기에, 동네의 어르신이기에 차마 지나칠 수 없어서 한 번씩 도와준 것이 몇 년이나 계속 될 수 있었던 것은 따스한 사람의 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될까봐, 혹시 내 아들의 모습인 것 같아서 가슴 여민 사랑의 눈길을 보낸 것이다.
책장 속 어떠한 이론보다도 더 소중한 실천의 아름다움을 그분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중한 또 다른 가치는 '안전'이라는 이름이다.

올 여름 극장가에서 인기를 끌었던 '부산행'과 '터널'도 재난 사고를 소재로 삼은 영화다. 재난이라는 위급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애와 생과 사의 애절한 순간들이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이루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재난과 사고는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경주 지진'이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켰고, 메르스 사태는 영화 속의 이야기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세월호'는 아직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채 영원한 슬픔으로 국민들 가슴에 자리 잡아 있다.

안전은 생명과 직결되기에 중대한 명제이다. 예기치 못한 사태라지만 그에 대한 예방책이 정해져 있을 때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나라가 어지럽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최순실 사태'가 속보로 나오고 있다. 국정을 책임 진 지도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가려졌던 진실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세상의 희망을 만드는 건 몇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다.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 맑은 세상의 풍경을 만든다.

11월, 매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늦가을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희망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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